[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어린아이와 비슷한 4살 정도의 지능 동물로 바다에 '돌고래'가 있다면 육지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의 교감이 친밀해지면 유대가 끈끈할 정도로 말은 3~5살 정도의 지능 동물입니다.
'이동'의 역사가 사통팔달 철도와 자동차 등이 교통의 요지를 연결하고 있지만 인류의 삶을 바꿔 온 '이동'의 역사에서 말은 빼놓을 수 없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만큼 단순한 이동이 아닌 긴 거리를 말에게 의지한 채, 내 몸을 맡길 수 있는 수천 년의 역사 유대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 하는 어린아이를 우리에 가둬놓는 등 학대를 당했다면 어떨까요. 지난해 공주시 소재 목장에서 발생한 말 학대 사건의 피해마 중 하나인 '유니콘'이 대표적입니다. 학대와 방치 속에 있던 유니콘 등 일부 말들은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수 마리 말들의 죽은 사체 소식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습니다.
"달릴 수 없는 말도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한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말 복지의 필요성을 향한 울림을 줬습니다. 지난 8일 <뉴스토마토>가 말산업특구인 전북 장수군의 장수목장을 찾았을 때는 마른 체형의 '유니콘' 모습이 사라진 건마의 위용을 뽐냈습니다.
지난 8일 말 산업 특구인 전북 장수군 소재의 한국마사회 장수목장에 말 학대사건의 피해마 중 하나인 '유니콘(사진 왼쪽 구조 후 입양 당시, 오른쪽 현 모습)'이 건마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사진=마사회·공동취재단)
말 복지 쏘아 올린 '유니콘'
"돌고 돌아 처음 왔을 때 450kg으로 비교적 마른 편이었지만 지금은 500kg으로 아주 건강하다는 수의사 판단을 받았다"는 게 현장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백두대간 허리에 위치한 한국마사회의 장수목장은 축구장 약 70개 규모의 크기로 내륙 최대 말 산업 발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이곳엔 최대 325두의 말을 수용할 수 있는 마사와 훈련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퇴역 경주마의 승용 전환과 학대마 보호 시설뿐 아니라 퇴역마로서 남은 운명 동안 요양할 수 있는 넓은 초지의 '말 요양소'를 구축한 상태입니다.
마사회 현장 관계자는 "경주마 훈련과 생산, 승마의 대중화도 필요하지만 활용이 종료된 퇴역마들이 여기 와서 마지막 단계까지 지원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책임지자는 공감대가 있었고 여행을 보내자는 느낌으로 '말 요양소' 사업을 올해 처음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씁쓸함은 남습니다. 유니콘을 비롯해 그 옆에서 죽어간 말들처럼 활용 가치가 사라진 퇴역마들의 학대를 방지하고 개선할 법과 제도가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주무 부처인 농식품부가 말 복지 증진을 위한 말 의무 등록제, 말 보호센터 추진 등을 꺼내 든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말 복지 제고 대책 중 핵심은 현재 말 소유주의 자율적 신고를 '의무 등록제'로 강화하는 안과 '말 복지 인증제'입니다. 말 소유주 입장에서는 의무 등록제가 규제라는 항변이 있을 수 있지만 자동차 등록과 같이 소유주의 책임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큰 상황입니다.
의무 등록제가 될 경우 전체 두수에 대한 관리도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말 두수는 지난 2020년 2만6525두에서 지난해 2만7521두로 3.8% 증가한 실정입니다. 사업체 수도 2513개에서 2668개로 6.2% 증가했으나 용도가 끝난 말의 이력이 불투명한 게 현실입니다.
안용덕 농식품부 축산정책관은 "말 등록제 의무화로 '학대피해 예방'과 생애주기형 복지 지원이 가능하다"며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은퇴 이후에도 활용 가치를 높이며 부상 경주마에 대한 재활 지원을 통해 조기 도태를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말 복지 인식 제고를 위한 말 복지 인증제도 도입합니다. 복지 취약시설에 대해서는 전문가 현장 컨설팅을 실시하고 우수 시설엔 지원 우대를 하는 식입니다. 말 조련사, 장제사, 재활승마지도사 등 말 관련 자격시험에도 말 복지 과목을 추가 신설합니다.
안용덕 축산정책관은 "법 개정 사안인 만큼, 법안 발의를 예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8일 말 산업 특구인 전북 장수군 소재의 한국마사회 장수목장에 말 학대사건의 피해마 중 하나인 '유니콘'이 건마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지난 8일 말 산업 특구인 전북 장수군 소재의 한국마사회 장수목장에 말 학대사건의 피해마 중 하나인 '유니콘'이 건마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1년 예산 34억 수준…재원 확대 '관건'
문제는 재원 조달입니다. 퇴역마들의 학대를 방지하고 복지 등 개선할 법과 제도를 마련해도 향후 국비 예산과 마사회 지원·복지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농식품부는 2029년까지 5년간 소요예산 66억원을 추산하고 있습니다. 마사회는 5억원과 복지기금 103억원을 잡아놓은 상황입니다.
이는 말 구호 시스템 구축과 학대 행위 모니터링 강화, 복지 사각지대 실태조사, 말 등록 의무화·전 생애 관리 체계 강화, 은퇴노령마 용도 전환 지원, 인도적 처리 지원, 말 복지 컨설팅, 말 복지 교육 강화 및 인증제 도입 등에 소요되는 규모입니다.
초기 도입과 정착을 위한 과도기로서는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그럼에도 말 산업→말 복지의 정착 완성을 위해서는 상당한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 현장 관계자는 "말 한 마리에 소요되는 관리 비용이 한 달에 150~200만원 수준"이라며 "구조한 유니콘의 경우도 개인이 키우려 했지만 환경과 여건상 어려워 장수목장에 다시 입양돼 초원 방목을 통한 요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자체 한 관계자는 "장수군은 승마레저파크를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2018년 말산업 특구로 지정된 장수군의 대표적인 공공승마 체험시설로 연평균 2만여 명이 방문한다"면서도 "현 상황에 말은 관광수익목적으로서는 수지타산이 맡지 않다. 말에 들어가는 소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으로 말 복지는 수익보단 지원사업에 가치를 둬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말 산업→말 복지→승마 체험 등 지역 관광 활성화까지 연계한 지역 생태계의 자생적 선순환까지 정부 예산 확대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전체 예산 규모가 장수군만이 아닌 전국 단위를 대상하고 있어 재원 확대의 필요성은 있다. 정부·기관·지자체, 민관 등이 합심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말 의무 등록제 강화와 말 복지 인증제 도입을 골자로 한 말 복지 제고 대책(2025~2029년)을 지난달 30일 발표했습니다. (사진=뉴스토마토) 농림축산식품부는 말 의무 등록제 강화와 말 복지 인증제 도입을 골자로 한 말 복지 제고 대책(2025~2029년)을 지난달 30일 발표했습니다. (사진=뉴스토마토)
전북(장수)=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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