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현 기자]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12월3일 박안수 계엄사령관 명의의 포고령을 사전에 확인하는 장면이 대통령실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걸로 확인됐습니다. 그간 한 전 총리는 포고령과 관련해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서 계엄과 관련된 문건을 보거나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경찰 국가수사본부가 확보한 CCTV엔 한 전 총리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들이 담긴 걸로 전해졌습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6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경찰청 세검정로 본관에 위치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에서 조사를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해 귀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7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 확보한 대통령실 CCTV에는 지난해 12월3일 한덕수 전 총리가 용산 대통령실 2층에 있는 대접견실에서 비상계엄 선포 직전 포고령 문건을 받아서 확인·검토하는 장면이 찍혀 있습니다. 한 전 총리가 포고령 문건을 주위에 있던 국무회의 참석자들과 공람하는 장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언론사 단전·단수 외 다른 지시를 받는 장면도 담긴 걸로 전해졌습니다.
국수본은 최근 대통령 집무실 복도와 국무회의가 열린 대접견실 CCTV 자료를 경호처로부터 확보했습니다. CCTV 분량은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3일 오후 6시부터 이튿날까지입니다. 애초 대접견실에 CCTV가 있다는 건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고, 경호처도 이를 수사기관에 제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수본은 최근 CCTV의 존재를 파악하고 확보를 마쳤습니다.
그간 국수본은 관련자 증언 등을 토대로 비상계엄 국무회의 당시 상황을 추정했습니다. 수사기관이 대통령실 CCTV 등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자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 최상목 전 부총리는 모두 '계엄을 강하게 만류했거나 반대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었습니다. 포고령 문건과 관련한 진술 역시 마찬가지로 '부인'이었습니다. 국수본은 12·3 계엄 당시 정확한 상황을 입증할 물증이 없었고, 관련자들의 증언 또한 엇갈렸기 때문에 수사가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월2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씨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서 계엄과 관련된 문건을 보거나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비상계엄 문건을 소지한 경위에 대해서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12·3 계엄 당일 저녁 8시55분쯤 비상계엄 소식을 처음 접했고, 비상계엄 선포를 윤석열씨로부터 듣기 전까지는 계엄에 관한 내용을 전혀 몰랐다는 겁니다.
한 전 총리는 이보다 앞선 지난해 12월11일 국회에 출석해선 "12월3일 저녁에 대통령실 도착 이후에 (계엄을) 인지했다"며 "반대하는 의사를 분명하게 했고, 국무위원들을 소집해서 국무회의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그런 의지를 (중단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막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반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은 지난해 12월26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무회의에 대통령이 임석하기 직전 총리에게 계엄 이야기를 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김용현 전 장관은 1월23일 윤씨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 "(최상목 전 부총리에게 비상입법기구 설치 문건을) 건넨 사실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최 전 부총리는 "비상입법기구 설치 등이 들어간 쪽지를 제가 받았고, 대통령이 계신 자리에서 실무자가 저한테 참고자료를 줬다"고 했고, 이상민 전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 집무실에서 책상 위에 놓여있는 단전·단수 내용이 적힌 쪽지를 봤다라고 말했습니다.
국수본은 이번에 확보한 CCTV 영상을 통해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국수본이 CCTV를 확인하고, 26일 한덕수 전 총리와 이상민 전 장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를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한 건 혐의 입증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졌다는 방증입니다. 국수본 관계자가 한 전 총리 등에 대한 소환과 관련해 "확보한 대통령실 CCTV를 분석해 보니 국무회의와 관련해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 최 전 부총리의 (앞선) 출석 조사 때 진술과 다른 부분이 확인됐다"고 설명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아울러 국수본이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 최 전 부총리 등 세 사람을 순차적으로 같은 날 부른 건 입맞추기를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국수본은 이와 함께 한덕수 전 총리와 최상목 전 부총리에 대해 이달 출국금지 조처를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경찰은 이상민 전 장관과 김용현 전 장관 등에 대해서는 지난해 12월 출국금지한 바 있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1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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