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368명에 묻다)②"장사? 올해가 제일 힘들어요"
서울 25개 자치구 전통시장 45곳 방문…368명 '설문조사 및 인터뷰'
고물가-소비위축 악순환 "재료비 상승 탓 가격 인상…매출은 줄어"
계엄 이후 무정부상태…상인들, 인건비·외식비 줄이며 각자도생 중
경기 악화된 이유 묻자 "대통령이 엉뚱한 짓, 나라 살림 잘못 했다"
정치권 향한 불만 이어져 "서민 위한 대통령 없어…국민통합 해야"
2025-06-02 06:00:00 2025-06-02 06:00:00
[뉴스토마토 신태현·강예슬·유근윤·차종관 기자] "코로나19 때보다 매출이 더 안 좋아요. 당시가 100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50%도 팔기 힘들어요. 계속 하락이야. 이 장사만 9년째인데, 올해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지난 29일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시장에서 만난 김종태씨(가명·60)는 '요즘 경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김씨는 올해로 9년째 닭강정을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씨를 만난 날, 가게는 내내 한산했습니다. 김씨는 '나 홀로 사장'입니다. '직원은 따로 없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은 "혼자서도 이렇게 놀면서 일하는데, 직원이 필요하냐"였습니다. 김씨가 체감하는 경기침체 상황은 코로나19 때보다도 심합니다. 그는 "1년 매출이 4500만원도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오르는 원재료 비용에 브라질산 닭 파동까지 겹치자 김씨는 최근 닭강정 가격을 2000원 올려야 했습니다. 손님들 입장에선 닭강정을 사 먹을 문턱이 높아진 겁니다. 고물가와 소비심리 위축의 악순환입니다. 
 
<뉴스토마토>는 5월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25개 자치구 전통시장 45곳을 방문, 상인 3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대면 인터뷰를 병행한 심층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6·3 대선을 앞두고 민생현장의 생생한 민심을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상인들은 꽁꽁 언 경기로 소득이 줄자, 허리띠를 졸라매며 겨우 버티고 있었습니다. 
 
5월29일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골목시장 입구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경제는 악화됐지만, 12·3 계엄과 윤석열씨 파면 이후 나라는 사실상 무정부상태입니다. 상인들은 결국 저마다의 각자도생을 위해 궁여지책을 강구하는 처지까지 내몰렸습니다. 28일 강동구 암사종합시장 초입에서 만난 김모씨는(67)씨는 시멘트 바닥에 앉아 청상추를 다듬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뻥튀기와 누룽지를 판매하는 김씨의 가게에는 직접 밭에서 따 온 청상추, 가락시장에서 떼 온 양파와 고구마 등이 널려 있었습니다. 
 
김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강원도 원주에서 청상추를 따온다고 합니다. 그는 신선한 청상추를 자랑하려는 듯 "맛있다고 잘 팔려요. 농약하고 비료도 일절 안 써서 맛이 달라요"라고 했습니다. 원래는 뻥튀기를 주로 팔았지만, 더운 여름철엔 뻥튀기가 금방 눅눅해져 장사가 안 되자 직접 기른 농작물을 대안으로 내놓게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해도 떨어지는 매출을 극복하는 건 역부족입니다. 김씨는 "매출이 1년 전과 비교하면 반토막 났다"면서 울상을 지었습니다. 원인을 묻자 한탄과 한숨을 길게 내뱉더니 "대통령이 엉뚱한 짓거리나 하고 나라 살림을 잘 못 해서 벌어진 일이죠. 대통령을 일 잘하는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대문구 독립문 영천시장에서 강아지용품점을 운영하는 박모씨(67)씨는 인건비를 줄였습니다. 그는 "한때는 직원이 4명이었지만, 코로나19 이후로 매출이 쭉 떨어져서 지금은 3분의1 수준"이라며 "사장인 나 혼자 나와 일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씨와 이야기하며 20분가량 가게에 머물렀지만, 문을 여는 손님은 없었습니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손님들이 지갑을 닫자, 도매상도 힘들어진 건 매한가지입니다. 서대문구 인왕시장에서 30년째 과일상을 한다는 정모씨(53)씨의 주요 고객은 동네 노점상과 소매상입니다. 정씨는 "과거보다 손님이 크게 줄고, 매출이 30% 정도 감소한 것 같다"며 "대형마트도 많이 생기고, 연세 든 분들은 가게 그만두는데 젊은 사람들은 과일 소매상 같은 건 안 하려고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정씨에게 '새 정부에 바라는 정책이 무엇이냐'고 묻자 지역상품권 활성화를 꺼냈습니다. 그는 "대형마트가 생기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지역상품권 정책은 좋았다"면서 "그건 시장에서 써야 하니까 손님들이 일부러라도 찾아온다"고 말했습니다. 
 
정씨 상점에 20분간 머물렀지만, 온 사람은 새로 문을 연 동네 갈빗집 사장뿐입니다. 개업 홍보물을 주려고 방문한 겁니다. 한 손님은 걸음을 멈추고 수박값을 물었지만, 3만원이라는 정씨의 말을 듣자 자리를 떴습니다. 
 
손님이 끊겨 소득이 준 상인들이 택한 건 '지출 줄이기'입니다. 점심때가 지난 늦은 오후 물에 밥을 말아 장아찌를 반찬으로 삼거나 라면으로 허기를 때우는 상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에서 만난 신모씨(62)도 집에서 만든 도시락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생활용품을 파는 그는 "식당 가서 밥 먹으면 1만원은 넘는다"며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 한다. 외식 한 번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중 휴대전화 문자를 확인한 신씨는 "자동차 보험료도 있고, 자꾸 돈만 내라고 한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새 정부에 바라는 정책을 묻자 현답이 돌아왔습니다. 신씨는 "누가 당대표가 되고 대통령이 되든 잘하길 바라는 거지. 그런데 요즘 대선 후보들이 TV에 나와서 하는 걸 보면 자기가 '뭐를 하겠다' 이런 말은 안 하고 서로 막 물어뜯기 바쁘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일단 당선되면 그 사람이 잘되게 밀어줘야 된다"고 했습니다. 
 
5월29일 서울 강동구 암사종합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인터뷰 주제가 정치 이야기로 옮겨가자 서민을 위한 대통령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불만도 나왔습니다. 광진구 중곡제일시장에서 쌀집을 운영하는 채모씨(53)는 "최근 유심 해킹 사건이 터졌는데, SKT 가입자가 알뜰폰 이용자까지 해서 2000만명이 넘는다더라. 시민들은 이거 때문에 엄청 불안한데, 왜 정치권이나 대선 후보들은 이 문제 대해서 한마디도 안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더니 "우리나라 정치는 꼭 누가 죽어야만 말을 한다. 전세사기 때도 피해자들이 죽으니까 그때서야 말을 한 거야"라면서 답답함을 호소했습니다. 
 
국민 통합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중곡제일시장에서 만난 오모씨(70)씨는 "정치 이야기를 하면 서로 편이 갈려서 안 된다"며 "선거가 끝날 때까진 서로 말과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새 정부에 바라는 정책에 관해 묻자 그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국민 통합과 정치 양극화 해소' 중에서 한참 고민하더니 '국민 통합'을 택했습니다. 그는 "정치 양극화를 풀고 국민을 통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너무 갈등이 심해지면 나라가 반쪽 된다. 경제성장과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국민 통합이 먼저"라고 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21대 대선을 앞두고 '민생경제의 바로미터'인 전통시장 상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5월27일부터 29일까지 3일에 걸쳐 서울 25개 자치구의 시장 45곳을 찾아 '21대 대선 국민인식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설문조사의 문항은 총 13개입니다. 주요 문항은 △윤석열정부 출범 후 경제 상황 △12·3 계엄이 경기에 미친 영향 △최근 1년간 매출 변화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 △정치성향 △지지 정당 △윤석열씨 파면에 대한 의견 등입니다. <뉴스토마토>는 설문조사 이후 정치·경제현안에 대한 인터뷰도 진행했습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차종관 기자 chajonggwan@etomato.com
정재연 인턴기자 lotu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