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5년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싼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 2024년 김건희씨를 둘러싼 목걸이 논란.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두 사건이 촉발한 대중의 분노와 그 이면에 숨겨진 권력 구조의 모순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실제로 그 목걸이를 구매하지도 않았고, 사건의 피해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들에게 그 목걸이는 왕실의 사치와 무책임의 상징이 되었다. 이 목걸이 사건은 프랑스가 4년 뒤에 대혁명으로 차달은 계기가 되었다는 해석이 역사계의 정설이다. 마찬가지로 김건희씨 관련 목걸이 역시 그 자체의 가치를 넘어서 권력층의 특권 의식과 도덕적 해이를 상징하는 기호로 작동한다.
다른 수많은 비리나 부패 사안들도 존재하는데, 유독 목걸이 하나가 이토록 강력한 여론의 화력을 집중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일반 국민들에게 고가의 목걸이는 그들과 권력층 사이의 격차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1785년 프랑스 농민들이 빵값 걱정을 하던 시절, 그리고 2024년 한국 서민들이 물가 상승에 고통받는 현실에서, 목걸이는 '그들만의 세계'를 상징하는 소품이 되었다. 이 점에서 김건희씨의 목걸이는 한국판 마리 앙투아네트 사건의 완결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총선을 앞두고 김경률 회계사가 경고한 그대로다.
두 사건 모두 권력과 종교, 그리고 이들 사이를 오가는 중간 브로커들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마리 앙투아네트 사건에서는 로앙 추기경과 잔 드 라 모트 백작부인 같은 인물들이 왕실과 교회, 그리고 사기꾼들 사이의 연결 고리 역할을 했다. 베르사이유 궁전 앞 정원에서, 달밤의 밀회와 음모, 궁정의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사치와 방탕. 여기에 스스로 도덕성을 회복하기 어려운 허술한 권력. 통일교, 서희건설, 건진법사, 사업 브로커와 영부인이 얽혀 특권을 형성하는 서사는 시공을 초월하여 비슷해 보인다. 여기에다 무더기로 쏟아지는 시계와 팔찌와 브로치까지, 권력자에게 접근하기 위한 여러 명품들을 둘러싼 인사 청탁, 이권 개입 등은 절대왕정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는 최근 보수 성향의 패널들조차 방송에서 김건희씨의 구속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부를 동시에 구속하는 것은 법 집행의 관례에도 맞지 않고, 너무 가혹한 처사라는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옹호하던 국민의힘이나 극우 목사들도 유독 목걸이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다. 최소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라도 주장하던 윤석열-김건희 변호인들도 이 점에는 저항하지 못한다. 그간의 김건희 구속 반대 목소리는 목걸이에 한 방에 휩쓸려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계산을 넘어선, 더 깊은 차원의 변화를 시사한다. 마리 앙투아네트 시대에도 초기에는 왕실을 옹호하던 귀족들이 목걸이 사건 이후 점차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 점에서 김건희씨의 목걸이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인식 전환과 변혁을 촉발하는 계기로 활용될 잠재력이 크다.
다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는 18세기와 달리 혁명이 아닌 제도적 해결책을 제공한다. 특검과 사법부, 그리고 언론과 시민사회의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진보이지만,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은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인간의 허영심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근절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사이비 종교와 무속이 어우러진 신흥 권력은 21세기 문명사회에서도 버젓이 세력을 확장하며 권력에 거침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 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권력 그 자체를 새로 구성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앙투아네트의 목걸이가 공화제 시대를 넘는 상징이었다면 김건희의 목걸이는 권력을 민주적으로 재구성하는 시대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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