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50조 ‘성장 엔진’에 ‘가치의 나침반’을
2025-09-18 06:00:00 2025-09-18 06:00:00
최근 정부는 대한민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계획을 선보였다. AI와 반도체 등 미래를 좌우할 10대 첨단전략산업에 자금을 집중 공급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이다. 이는 과거의 단기 부양책이나 융자 지원을 넘어, 정부가 모험투자자로서 ‘인내하는 자본’을 직접 공급하며 미래산업의 판을 바꾸겠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저성장의 덫에 갇힌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경로를 개척하고, 나아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을 주도하는 ‘기업가적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담대한 포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청사진이 진정한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강력한 성장 엔진에 더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가치의 나침반’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 나침반이 바로 ‘임팩트’의 문제의식이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장려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만들어낼 기술과 산업이 과연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 기술이 만드는 일자리는 양질의 일자리인지, 성장의 과실은 소수가 아닌 모두에게 돌아가는지,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 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지와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 바로 임팩트다. 금융의 역사 또한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수익만 좇던 금융 1.0을 지나, 위험을 관리하는 금융 2.0을 거쳐, 이제 금융은 수익과 위험에 더해 사회·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금융 3.0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가 “지속가능성으로의 전환은 우리 세대의 가장 큰 투자 기회”라고 천명했듯, 임팩트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과 번영의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물론 ‘성장’과 ‘임팩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좇다 둘 다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수익과 임팩트를 여전히 분리 가능한 별개의 목표로 보는 낡은 전제에 기반한 것으로, 이제 기후변화나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임팩트 요인이 기업의 장기적 수익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리스크' 변수가 되었음을 간과한 것이다. 캐나다 현직 총리로 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했던 마크 카니의 “금융을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들과 정렬시켜야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반영한다. 
 
그가 말하는 ‘가치’란 지속가능성·포용성·회복력과 같은 시대적 과제들이며, 이는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기회가 되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의 말처럼 “금융이 사회 구성원들이 꿈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라면, 국민성장펀드는 이 시대적 가치를 실현하는 가장 정교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돈만 버는 기계가 되어 성장의 그늘을 외면한다면, 결국 사회적 갈등과 시스템 리스크라는 더 큰 비용을 미래 세대의 청구서로 남길 뿐이다. 이는 현명하지 못한 투자이며, 지속 불가능한 성장이다.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은 결국 서로 다른 얼굴을 한 자본들을 어떻게 하나의 목적 아래 조화롭게 묶어내느냐에 달려있다. 이 거대한 주머니 속에는 정부의 정책자금과 연기금의 장기자본은 물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피 같은 투자금까지 담길 예정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운용을 바라는 국민과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민간 금융기관 그리고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려는 정부의 목적을 모두 만족시키며 잠재력 높은 신생 기업을 선별하고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난 10년간 한국의 사회적금융과 임팩트투자가 축적해 온 경험이 빛을 발한다. 이들은 재무적 수익과 사회적 가치라는 이질적인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후순위 대출이나 상환전환우선주(RCPS), 사회성과연계채권(SIB) 등 혁신적인 금융 수단을 설계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자금을 융합하는 ‘블렌디드 파이낸스(blended finance)’를 끊임없이 실험해온 전문가들이다. 이들의 경험은 국민성장펀드가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으며 촉매자본과 민간자본을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인내하는 자본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귀중한 해법을 제공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성장펀드는 그 재원의 구성부터 명확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정부의 재정은 실패를 감수하며 길을 여는 ‘촉매자본’이 되어야 하고, 연기금은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의 변동성을 견디는 ‘인내자본’의 역할을, 그리고 국민의 참여로 모인 민간자본은 시장의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각각 수행해야 한다. 이처럼 성격이 다른 자본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강력한 구심점이 바로 ‘임팩트’라는 공동의 방향 설정이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단순히 민간의 수익을 보전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성장의 길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 명확한 방향성이야말로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참여자들을 하나로 묶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된다. 물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식과 속도는 유연해야 한다. 펀드 전체의 큰 지향점은 ‘임팩트 성장’으로 분명히 하되, 개별 투자는 기술 주권 확보·공급망 안정·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가치를 전략적으로 고려하여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국민성장펀드는 강력한 성장 엔진에 가치의 나침반을 정교하게 장착하고 유연하게 운용될 때 비로소 ‘모두를 위한 성장’이라는 시대적 소명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박종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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