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 법안 처리 지연을 두고 금융당국을 강하게 질책했지만 상반기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은 사실상 1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야당 반대에 부딪힌 탓이지만, 주무부처인 금융위가 포용금융 관련 정책 쏠림, 정부 입장 정리 미흡 등으로 실기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신용정보법 개정안' 통과 유일
29일 정치권 및 국회에 따르면 금융위는 올해 초 신용정보법 개정안과 서민금융법 개정안,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환급법 개정안,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자본시장법 개정안, 동남권투자공사법 등 주요 법안을 중점 처리 대상으로 선정하고 국회 정무위원회 설득에 집중해 왔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금융 관련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상황을 언급하며 이억원 금융위원장 등 국무위원들에게 강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지금 야당이 정무위원장이라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며 "상임위를 아예 열지 않는 것 같은데 가서 빌더라도 어떻게 좀 해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상법이나 자본시장법 개정, 금융 관련 법안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통령 공개 질책 이후 금융위 분위기는 급박해졌습니다. 금융위 실무진은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실을 직접 방문하며 법안 필요성을 설명했고, 일부 직원들은 사실상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법안소위 일정과 처리 가능성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금융위 중점 처리 법안 가운데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것은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유일합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드뱅크' 성격의 새도약기금 운영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인데요. 부실채권을 일괄 매입하고 채무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신용정보 활용 근거를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당초 국민의힘 등 야당과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채무조정 과정에서 차주 동의 없이 금융정보가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는데요. 그럼에도 민생지원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반면 서민금융법 개정안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책서민금융 공급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서민금융안정기금을 신설하고 금융사 출연금 제도의 일몰 규정을 사실상 없애는 내용입니다. 햇살론, 최저신용자 특례보증 등 정책금융 재원을 상시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금융사에 대한 준조세 성격 부담을 사실상 영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금융권에서 불거진 데다 야당에서도 금융권 부담 증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법안 논의 속도가 더딘 상황입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환급법 개정안 역시 국회 표류 중입니다. 해당 법안은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를 강화하고 금융회사와 통신사의 책임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무과실 배상 책임이 금융사 등에 과도하게 전가할 경우 관련 비용이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고 주장이 맞서고 있는데요. 책임 배상 범위와 손해배상 기준을 둘러싼 이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가 개최되는 모습. (사진=뉴시스)
포용금융 '올인'하느라 금융 개혁 스톱
자본시장 입법 역시 핵심 쟁점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업공개(IPO) 시 기관투자자의 일정 기간 의무보유를 부과하는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 등은 통과됐지만, 의무공개매수제와 쪼개기 상장 관련 신주우선배정 제도 등 핵심 법안은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 금융 활성화를 위해 추진된 동남권투자공사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 성장기업 육성과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목표로 하지만 상임위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 상태입니다. 지역구 의원 간 이견이 큰 데다 지역 표심을 겨냥한 선거공약 성격이 큰 만큼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동력이 붙을지 의문인 상황입니다.
대통령의 공개 질책 이후 금융위가 국회를 상대로 총력 설득전에 나섰지만 금융위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국회 입법 지연만을 문제삼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야당의 반대 등으로 국회 법안 처리가 지연된 부분도 있지만, 주무부처인 금융위도 법안 설계 과정에서 혼선을 빚어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청와대로부터 부동산 정책 관련 다주택자 규제에 이어 포용금융 확대 방안에 대한 주문이 이어지면서 금융위가 금융 관련 법안에 대한 입장을 조율하기가 버거운 상태"라며 "현재는 법안 우선순위 자체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부터 SNS를 통해 부동산 투기 근절, 다주택자 규제 등 고강도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한 바 있습니다. 이후에도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 등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습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도 SNS를 통해 은행 등 금융사의 공공적 역할 확대를 연일 주문했는데요. 금융정책 주무부처인 금융위로서는 상반기 정책 기조를 포용금융에 집중한 상황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금융 개혁 법안들도 산적해있습니다. 가상자산 2단계 입법(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대표적입니다. 금융위 등 경제부처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스테이블코인 관련 디지털자산기본법을 1분기 중에 입법할 것이라고 대통령에 지난 1월 보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지방선거, 정무위 원구성 변화 등으로 법안 논의가 미뤄지고 있습니다.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안도 발표 시기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당초 긍융위는 금융지주 주주총회 이전인 3월 발표를 목표로 했지만, 현재는 시기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금융위는 자율규제 성격의 모범관행 가운데 어떤 내용을 금융사 지배구조법에 반영할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회 정무위 의원실 관계자는 "주무부처인 금융위가 디지털자산기본법이나 금융사 지배구조법 관련 정부 입장을 정리해줘야 여당에서도 법안 논의에 속도를 낼 수 있는데 (금융위가) 정부안을 제출하지도 않고 있다"며 "청와대 주문을 기다리다거나 기류 변화 등을 반영해야 하다 보니 금융위가 주도적으로 정책 수위를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