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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사회책임투자위원회’가 ‘책임 빙자한 책임면피용’이 되지 않는 조건
2017-11-06 08:00:00 2017-11-06 08:00:00
“윤리위원회는 한세 예스24 홀딩스와 자회사 한세의 조직적인 인권위반 책임성에 대한 용인할 수 없는 위험 때문에 GPFG에서 투자를 배제하기를 권고한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로 세계 2위의 규모의 연기금인 GPFG(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를 위한 윤리위원회(Council on Ethics)는 노르웨이 중앙은행에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23페이지 분량의 권고안을 올해 5월 5일 보냈다. 권고안에는 주로 의류회사인 한세의 베트남 사업장에서 일어난 강제노동, 안전과 보건, 불공정한 해고, 차별 등에 대한 조사 내용을 비롯해 한세와의 접촉과 개선 노력 등이 담겨 있다. 중앙은행은 6월 23일 두 기업의 투자배제 대신 관찰기업 리스트 등재를 결정하고, 윤리위원회에게는 기업의 진행 상황을 지켜봐 달라고 요청했다. 이 내용은 6월 29일 전세계에 일제히 보도되었다.
 
노르웨이의 GPFG는 전세계 사회책임투자(SRI)의 모범으로 꼽히는 연기금이다. 투자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를 위해 2004년 독립적인 기구로 설립된 윤리위원회는 다른 나라 연기금과 GPFG를 차별화시키는 핵심이다. 물론 스웨덴의 AP도 윤리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GPFG의 활동은 독보적이다. 윤리위원회는 ‘투자배제와 감시를 위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GPFG에 편입되어 있는 기업 중 제품기반과 행위기반으로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들을 실태를 조사하고 평가해 투자를 배제하도록 권고하는 역할을 한다.
 
보건복지부, 사회책임투자위원회 신설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연금에도 윤리위원회와 유사한 성격의 기구가 생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기금을 관리?운용하는 기금운용위원회 내에 ‘사회책임투자위원회’를 신설해 운용한다는 내용이 일제히 보도되었다. 11월 중 기금운용위원회를 개최해 이같은 내용을 보고하고 논의를 거친 후, 운영 규정도 만들어 내년 중으로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장관을 위원장으로, 당연직 위원과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대표 및 관계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고의사결정기구다.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는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사전 심의기구인 실무평가위원회를 비롯해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성과평가보상전문위원회라는 분야별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전문위원회의 하나로 ‘사회책임투자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말이다.
 
보도에 따르면 ‘사회책임투자위원회’는 사회책임투자의 관점에서 기금운용을 평가하고 모니터링을 한다. 즉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영역에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투자철회, 투자제한, 투자변경 등을 권고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세부적인 사회책임투자 가이드라인도 만들어 진다. 투자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에 대해 그동안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획기적으로 발상을 전환했다는 점에 대해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국민연금 무책임한 투자행태에 국민들 ‘임계점’
사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위원회’ 신설을 전격 결정한데에는 그동안 국민연금의 무책임한 투자행태가 국민들이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점에 있다. 국민연금은 불법과 편법, 심지어 사망자를 포함해 수천 명의 피해자를 발생시키는 등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기업에까지 투자해 상당한 비난을 받아왔다.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기업, 분식회계와 횡령 등 비리로 얼룩진 대우조선해양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채용비리의 끝판왕 강원랜드, 배기가스 조작 폭스바겐 등이 대표적이다.
 
더욱 큰 문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 투자를 해놓고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기업관여(engagement)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투자철회 혹은 기업관여 촉구 요구에 묵묵부답이거나 하더라도 면피용의 형식적인 흉내에 불과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재벌과 권력의 사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자산수익을 가볍게 포기해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대한 신뢰를 바닥까지 추락시켰다. 국회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연금의 무책임한 투자를 비판해 왔다. 그리고 사회책임투자를 의무화 하거나 강화하는 법안들을 다수 발의했다. 때문에 이번 사회책임투자위원회 신설 결정은 국민연금이 이러한 비판과 사회적 기대를 수용해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고, 단단한 각오라고 할 수 있다.
 
사회책임투자위원회 신설은 대통령의 약속
사실 사회책임투자위원회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기구 설립의 필요성을 최초로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 4·13 총선과 5·9 대선에서는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이 기구의 설립에 대한 찬반 그리고 추진방식에 대해 각 당과 대선 주자에 요구한 바 있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찬성 의사를 밝히고 2017년에 이를 추진하겠다고 답변했고, 이 약속이 실현되고 있다. 아무튼 지난해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와 더불어 내년부터는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더 나아가 우리나라 금융시장 전체의 사회책임투자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또한 한층 더 높아질 걸로 예상된다.
 
사회책임투자위원회 대원칙 : 투자의 사회적 책임성 최대한 확보
현재 사회책임투자위원회에 대한 그 어떤 구상도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이 기구 설립을 위한 대의명분이자 운영을 위한 대원칙 만큼은 분명하다. 바로 국민연금기금 투자의 사회적 책임성(Social Responsibility)을 최대한 확보해 기금은 물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책임투자위원회의 위상과 역할과 권한 설정은 물론, 위원 구성과 임명을 위한 기준에도 확고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사회책임투자위원회 : 독립적 성격의 상시적 전문기구
보도에 따르면 사회책임투자위원회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신설된다. 중요한 건 사회책임투자위원회는 ‘독립적 성격의 전문 기구’이어야 하고, 운영 규정도 이를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입김으로부터 독립되어 오직 합의한 사회책임투자의 정신에 입각해 투자에 관한 명확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노르웨이 정부 연금펀드를 위한 ‘윤리위원회’가 그 모범이다.
 
노르웨이 윤리위원회는 ESG 이슈와 관련해 기업들을 상시적으로 관찰?감시(monitoring)하고, 좀더 상세한 평가(assessment)를 위해 편지를 써 질문하고 문서를 요구하고 면담하는 등 기업과 접촉(contact)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윤리위원회는 2016년 한 해 동안 162개 기업을 조사해 이중 64개 기업에 대한 평가를 시작했고 53개는 평가를 완료했다. 또 86개 기업과 접촉했고 22개 기업을 만났다. 그리고 문제가 심각한 기업에 대해서는 GPFG에서의 투자배제를 권고한다.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위원회도 바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책임투자위원회는 ‘상시적인 전문 기구’이어야만 한다. 또 기업만이 아니라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책임투자와 관련해 전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 기관과 상시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ISO 26000에서 제시한,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7대 주제(지배구조, 인권, 노동, 환경, 공정거래관행,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와 발전)별 활동기관들과의 협력도 전문성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 사회책임투자위원회 운영 규정은 이러한 활동이 원할히 수행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사회책임투자위원회의 권고 : 실제 투자에 반영 필요
사회책임투자위원회의 ESG 이슈와 관련한 기업감시와 평가결과에 토대를 둔 투자 관련 권고는 실제 투자에 효과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활동은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펀드에만 한정되지 않고 모든 투자에 적용되어야 한다.
 
노르웨이의 윤리위원회는 특정 기업의 투자배제와 관련해 재무부(Ministry of Finance)에 권고하고, 재무부는 이 권고에 대해 승인을 거쳐 해당 기업의 투자철회를 노르웨이 중앙은행에 지시할 수 있다. 중앙은행은 2개월 이내에 해당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재무부의 윤리위원회의 권고 이행 여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중요한 점은 윤리위원회의 권고가 단지 권고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으로 수용된다는 사실이다. 투자배제까지는 아니어도 관찰대상에 올려 놓는다. 예상컨대 국민연금 사회책임투자위원회의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배제 권고는 우선 보건복지부에 통보되고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상정되어 의결을 거친 후,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권고의 수용률을 높이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책임투자위원회의 활동을 감안하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도 상시적인 조직이 되어야 한다.
 
위원 인적 구성 : 사회책임투자의 철학과 활동 헌신 인사
마지막으로 사회책임투자위원회의 인적 구성이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위원회에 어떤 인사를 위원으로 임명할지는 알파와 오메가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실행하고 결정하는 사람이 철학과 사명감이 빈곤하다면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되는 국정농단을 통해, 그리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수탁자 책무가 쓰레기통에 던져진 연금농단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사회책임투자위원회 위원은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철학과 사명감이 투철하고 그동안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전문적인 인사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사회책임투자 정신 구현을 통해 사회의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사들로 채워져야 한다. 기업은 물론 금융기관도 국민연금의 투자대상이다. 때문에 이와 관계된 인사들은 이해관계 상충(conflict of interest)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자문위원들은 대개 교수로 채워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요성은 어느 정도 인정되지만 지나칠 정도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활동하고 대안을 제시해 오면서 나름대로 역사를 써 온 기관과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보건복지부가 구상하는 사회책임투자위원회가 ‘면피용’으로 전락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를 시작한 지 12년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ESG 고려와 기업관여 소홀로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무수한 비난을 받아왔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한만큼 사회책임투자위원회를 단순한 의견수렴 기구로 형식화 시키지 않도록 조직의 위상과 역할과 권한 그리고 위원 임명에 이르기까지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사회책임투자위원회는 ‘책임을 빙자한 책임면피’라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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