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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교토(京都)에서 날아든 ‘윤동주 시비 제막식’ 소식을 접하며
2017-11-13 06:00:00 2017-11-13 06:00:00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새로운 길’ 전문
 
지난 2017년 10월 28일, 일본의 교토 우지시(宇治市) 시츠카와(志津川)의 우지강(宇治川) 강변에서는 감동적인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바로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시비 제막식에서 ‘새로운 길’이 낭송되고 있었던 것이다. 시는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것으로 1938년 작품이다. 가을비는 시비에 새겨진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詩人 尹東柱 記憶と和解の碑)‘ 라는 글자를 또렷하게 읽고 있었다.
 
감개무량할 뿐이다. 일본 땅에서 그의 시가 허공에서 빗줄기를 헤치며 울려 퍼졌을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특히나 시비가 세워진 우지천 근처는 그가 생전에 ‘아리랑’을 불렀던 곳이라고 하니, 그때의 노래와 그의 작품 ‘새로운 길’이 서로 부둥켜안는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은 나만의 감흥만은 아닐 것이다.
 
교토는 윤동주 시인이 유학생활을 했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날은 시인의 영혼이 살아 움직였으리라. 하염없이 내린 비는 그가 흘린 감격의 눈물이었을까. 슬픔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양자의 의미가 혼재된 것이었을까. 시비에 새겨진 시가 그의 마지막 숨결처럼 가슴으로 흘러들어와 파문을 일으킨다. 그날의 이 감동적인 낭송과 기념비 제막은 모든 이에게 뜻깊은 울림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윤동주 시인의 시비 제막식과 관련한 여러 기사를 접하면서 특히, 나는 다음의 점에서 한국의 독자뿐만 아니라 그의 시를 좋아하는 모든 세계인들과 함께 하고 싶다. 무엇보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순수하게 그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뜻과 정성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1945년 2월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한지 72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단지 시비 건립에 소요된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제작에 참여한 그들의 숭고한 뜻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시비는 선뜻 그것을 세울 공간을 허락하지 않은 지자체를 설득하여, 무려 12년이란 시간의 공을 들인 노력의 땀방울이고 인고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이 시비는 단순히 윤동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 이상의 값어치에 더하여, 시비에 새겨진 문구대로 ‘기억과 화해’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기존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던 교토의 대학 교내가 아닌 곳에 세워졌다는 점에서도 그의 시와 그의 정신이 일본인들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시비가 품고 있는 정신이 세계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민족과 국경을 넘어 중요한 메시지로 확산될 모티브로 작용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이 시비에 흐르는 고귀한 뜻이 평행선처럼 느껴지는 작금의 한일관계에 밑거름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시 ‘새로운 길’ 의 지향점도 평화로운 세상과 아름다운 사람을 꿈꾸는 바로 그런 길과 이어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한국인보다는 시를 즐겨 읽지 않는다. 그런 일본인들이 우리의 시인 윤동주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의 시가 갖는 높은 가독성과 그의 시를 관통하는 맑은 영혼 때문일 것이다. 이미 일본의 어느 국어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이 세 편이나 수록되어 있는 등, 일본에서는 윤동주 읽기가 계속될 것이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시 ‘자화상’일부) 라고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 그가 만일 교토에서 날아든 자신의 시비 제막식 소식을 들었다면, 과연 오랫동안 품어왔던 자신의 고독이나 슬픔이 조금이나마 풀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글을 쓰는 내내 깊어가는 계절만큼이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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