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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가상화폐 정책 신뢰 잃은 정부
2018-01-09 08:00:00 2018-01-09 08: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규제안이 나올 때마다 (가상화폐) 코인 가격이 내려가기도 하지만, 이 역시 저가매수 기회가 된다. 가상화폐는 결국 살아남기 때문에 정부가 옥죌수록 희소성은 올라간다고 본다."(가상화폐 투자자A)
 
"초기에는 정부발 경고성 발언이 나올 때마다 가격이 급락하기도 했지만, 가상화폐 폐쇄 불가라는 입장을 알기 때문에 이제는 추가 대책이 나와도 별다른 변동이 없다."(가상화폐 투자자B)
 
정부의 가상화폐 대책이 나온지 한달이 다 돼간다. 불법도 합법도 아닌 '조건부 허용'이라는 규제안이 나오고,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가상화폐 거품론 등 구두성 경고를 내놓았지만, 시장에서는 믿음을 갖지 못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호재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범정부 가상화폐TF는 지난달 13일 가상화폐 거래소의 자격 제한을 두는 첫 규제안을 내놓았다. 정부가 '원칙적으로는 불법, 예외적 허용'과 '가상화폐 거래소의 제도권 편입 절대 불가' 입장을 강조했지만, 가상화폐 폐쇄 결정을 피한 시장은 '사실상 허용'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가상화폐 열기가 계속되자 금융당국 고위직 인사들은 가상화폐 거품론을 쏟아냈다. 특히 금융당국 수장인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가상화폐 열풍은 거품이다. 거품이 빠지는데 나와 내기를 해도 좋다"는 발언까지 내놓았다. 감독당국의 수장의 발언을 비웃기라도 한 듯 가상화폐 시세는 다시 고공행진이다.
 
대표적인 가상화폐 '비트코인' 가격은 정부의 규제가 나온 후 1900만원대로 200만원 이상 급락했지만, 다시 2000만원대로 올라섰다.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리플 등도 지속적인 상승 흐름을 보인다. 급기야 정부는 같은 달 28일 "은행권의 가상화폐 거래 계좌 발급 중지"라는 추가 대책을 내놓으면서 "법무부가 제안한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이 같은 엄포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대표는 "이렇게까지 경고를 하는데 계속 거래를 할 것이냐는 식의 엄포로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장이 당국의 경고를 무시하게 된 데에는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를 절대 폐쇄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의 입장정리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도 거래되고 있는 가상화폐를 정부가 처음부터 불법 유사수신행위라고 규정, 규제만으로 가상화폐 열기를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 신뢰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제도권으로 편입하지 못한다고 못 박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 제도권 수준의 규제를 들이대겠다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가상화폐 규제의 최종판이 될 것으로 보이는 '과세' 가능성 역시 '자산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면서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은 무슨 논리냐'는 부정여론에 맞닥뜨렸다.
 
현재의 가상화폐 대책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가상화폐를 불법화할 경우 가상화폐의 희소성이 높아져 그 가치가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국가가 가상화폐의 거래를 금지하더라도 거래가 가능한 다른 나라 통화로 환전할 수 있는 데다 암시장도 등장할 수 있어 가상화폐는 결국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정부가 애초에 가상화폐 거래소의 제도권 편입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두면서 규제의 방향을 정리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제도권 밖에 두겠다면서 금융회사 수준의 보안이나 투자자 보호 수단을 갖추겠다고 하는 어중간한 입장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만 떨어트릴 뿐이다.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이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일관된 정책노선이 관건이다. 어중간한 줄타기 식으로 가상화폐 규제와 투자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다가는 둘다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도권 수준의 규제로 가상화폐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이 일순위라고 판단한다면, 가상화폐 거래 합법화에 대한 논의 시작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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