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세상읽기)분노조절 장애 오너 리스크
입력 : 2018-04-27 06:00:00 수정 : 2018-04-27 06:00:00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행태가 연일 논란이다. 매일 새로운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땅콩에는 참았던 대한항공 직원들이 물 컵에는 참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회사가 망가지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항공 오너 가족의 행태는 단순한 갑질을 넘어섰다.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봉건 영주나 노예주가 되는 양 되먹지 못한 행동을 했다.
 
도대체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분노는 뇌과학자들의 중요한 연구 테마 가운데 하나다. 뇌에는 '분노 센터'가 없다. 그래서 연구가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분노가 시작되는 지점은 밝혀졌다. 딱 복숭아씨처럼 생겼다고 해서 '편도체'라고 부르는 곳이다. 편도체에서 시작된 분노의 날감정이 몇 밀리 초 후에 뇌의 가장 바깥 부분인 겉질로 전달된다. 그러면 겉질은 자기가 왜 화가 났는지 설명한다. 그러니까 화가 먼저 나고 화가 난 이유는 그 다음에 설명하는 셈이다.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분노 기작은 나무에서 살던 유인원 시절 위험을 재빨리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커니즘이다. 화가 나면 교감신경계가 작동해서 뇌에서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증가한다. 그 결과 몸이 바뀐다. 얼굴이 붉어지고 이마의 근육이 당겨지고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턱이 앙 다물어진다. 또 혈압이 오르고 맥박과 호흡이 빨라진다. 몸이 즉각적으로 위협에 대항해 행동할 준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화가 났다고 해서 모두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현대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행동할 준비가 끝났을 때 우리 몸에서는 부교감신경이 작동한다. 혈압을 다시 낮추고 근육을 이완시키면서 몸을 정상적으로 느긋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항공 오너 일가는 도대체 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일까?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로 정확히 진단을 해봐야 알겠지만 뇌 겉질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뇌의 겉질은 두께가 겨우 2밀리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인간 두뇌에 존재하는 뉴런(신경세포) 1000억개 중 3분의2를 포함하고 있으며 뉴런 사이의 연결 100조개 중 4분의3을 담고 있다. 겉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눈알 바로 뒷부분인 이마앞겉질이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여기에 손상을 입으면 분노체질이 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살인자나 폭력범들의 변호사들이 이마앞겉질 손상을 이유로 감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세 자녀뿐만 아니라 모친까지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교육의 영향일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꼬마들에게 역할극을 시키면 높은 지위의 역할을 맡은 아이들이 화가 난 표정을 짓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화난 표정을 한 사람이 더 힘이 세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성인도 일부러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뿐만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화를 낸다. 그 덕분에 항상 더 많이 얻어내는 성과를 내고 있다.
 
자기가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권력을 차지함으로써 공감능력을 상실했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높은 권력에 오르면 공감능력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자기 이마에다가 알파벳 대문자 E를 쓰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이 읽기 쉽도록 E를 거울상으로 뒤집어쓴다. 공감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자기 쓰기 편한 대로 이마에 E를 그냥 쓴다. 그러면 상대방이 읽을 때는 좌우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권력이 적은 사람들은 12퍼센트만이 자기 편한 대로 E를 썼지만 권력이 많은 사람들은 무려 33퍼센트가 자기 편한 대로 E를 썼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에게 이마에 E를 쓰라고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인문학자 정지우는 <분노사회>라는 책에서 우리 사회 분노의 기원을 압축성장과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기인한 불안에서 찾았다. 불안이 분노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뇌과학의 연구와도 일치한다. 분노사회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오래 걸리는 일이다.
 
개인도 충분히 분노를 관리할 수 있다. 뇌과학자들은 화가 나면 일단 모든 일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라고 권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매일 하는 일이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부모에게 아이를 맡겨서는 안 된다. 기업이나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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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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