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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문명으로 읽는 기업)⑨카카오, '천명지위성'으로 성장하라
2018-05-28 07:00:00 2018-05-28 07:00:00
국내 기업 가운데 2016년의 촛불혁명과 같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열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카카오다. 카카오는 제조업 중심의 한국 기업과 전혀 다르다. 카카오는 2010년 카카오톡을 출시하며 소비자에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는 파격을 보였다. 카카오가 세상을 보는 관점과 경영방식이 기존 기업과 달랐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아프리카 마사이족의 속담인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카카오의 파격은 2014년 합병했던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도 드러난다. 다음은 1997년 '한메일'을 공짜로 제공했고 2004년에는 본사를 제주도로 옮겼다. '사람이 나면 서울 보낸다'는 말처럼 본거지를 서울에 둬야 한다는 관행을 깬 새로운 실험이었다.

파격과 새로운 상상, 카카오의 정체성
 
다음의 탈서울 전략은 한국 기업이 온라인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어떤 발상을 해야 할지 잘 보여준다. 제조업 중심의 삼성과 LG는 서울중심주의다. 삼성은 고 이병철 회장이 경남 마산에서 창업했지만, 대구에 본사를 뒀다가 다시 서울로 옮겼다. LG도 경남 진주가 기반이지만 지금 본사는 서울 여의도에 있다.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의 시대에 기업 본사를 서울에 두는 것은 기업 성장의 첫걸음이었다. 다음이 본사를 제주도로 옮기자 재계와 언론이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다. 다음과 카카오톡은 박정희식 개발시대에 출발한 기존 대기업, 제조업 중심의 기업들과 성장 측면에서도 차이가 많다. 정치사와 비교하면 우리 정치가 87년 6월 항쟁 이전과 2016년 촛불혁명 이후로 구분되는 것과 같다. 한국 정치는 4·19, 80년 광주, 6월 항쟁 등으로 민주주의가 성숙했다. 하지만 운동의 유형은 1960년 4·19의 운동방식과 87년 항쟁의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동 지도부가 있고 조직적으로 동원된 운동 주체들이 형성됐었다. 그러나 2016년 촛불혁명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존의 상상을 뛰어넘는 광장 민주주의로 진화했다.
 
카카오 주요 사업. 사진/카카오
 
촛불혁명에서 스마트폰을 든 시민들은 빛의 속도로 뉴스와 정보를 재구성하고, 광장의 정보를 공유하며 급변하는 정세를 읽어냈다. 공유지성의 기발한 상상력과 순발력으로 권력에 저항했다.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100만명은 집회가 끝나도 검색과 댓글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촛불을 이어갔다. 분리된 개인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신경망으로 연결돼 정치와 일상 사이, 운동 조직과 개인 사이, 광장과 온라인을 넘나드는 새로운 혁명을 보여줬다. 이렇게 등장한 촛불혁명의 주체들은 장차 한국 정치를 주도할 것이다. 카카오는 기업 분야에서 촛불혁명과 비교되는 변화를 만들어 냈지만 문제는 기업가치와 정신에서도 촛불혁명과 같은 시대적 감수성과 새로움을 갖고 있느냐다. 카카오가 한국의 IT기업을 넘어 새로운 상상의 시대의 기업이 되려면 기술적 새로움보다 정신과 가치의 새로움을 창출해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조하는 상상의 공간이지만, 그 뿌리에는 1960년대 반전운동과 히피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 비즈니스가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하는 데는 리눅스 등 IT기업들의 공유가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정신은 구글과 페이스북도 물려받았고, 그들은 다른 세계를 만들었다.
 
동아시아문명의 관점에서 보면 카카오의 비즈니스 방식은 새로운 천하를 창조하는 것이다. 새로운 천하에는 동아시아적 가치와 철학을 담겨야 한다. 그래야 서구의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차별화할 수 있다. 21세기는 동아시아중심의 시대다. 글로벌시장에서 전통 제조업의 중심은 아시아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도 구글과 페이스북을 넘어설 기업이 나올 수 있다. 그러려면 기술적 모델도 서구 기업과 달라야 하지만 정신적 가치와 문명적 유산의 깊이에서도 그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의 소비자들이 그 가치와 정신을 공유하고, 그 시대의 선도성에 동의할 것이다. 동아시아문명의 관점에서 새로운 온라인 천하는 동아시아 정치의 '천명정치(天命政治)'와 '민본주의(民本主義)'로 요약된다. 카카오가 이 가치와 정신을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비즈니스의 기초로 삼는다면 서구의 글로벌 소셜미디어 기업과 차별화된 대안적 글로벌시장을 만들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이 일을 못 하면 조만간 중국의 마윈 등에 빼앗길 수 있다.
 
2010년 출시된 카카오톡은 올해 1분기 기준 4300만명이 사용하는 국민메신저가 됐다. 사진/뉴시스

동아시아문명으로 본 온라인 기업의 정신 
 
천명정치의 비즈니스 가치를 담은 고전은 <중용>이다. 성경의 창세기는 "태초에 신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는 선언으로 시작된다. <중용>도 "하늘이 명하심을 성이라 하고, 성을 따름을 도라고 하며, 도를 닦음을 교라고 한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고 선언했다. 이 말을 송나라 주희는 "도의 본원은 하늘에서 나와 불변이며 도의 실체는 자신에게 갖추어져 떠날 수 없음을 밝혔고, 그것을 기르고 살피는 요령을 말하였으며, 끝으로 성신(聖神)의 공화(功化)가 지극함을 말하였다"고 해석했다. 이를 기업경영에 빗대면, 온라인이라는 게 생겨났음을 받아들이고 그 변화의 은밀함을 포착해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라는 것이다. 카카오가 동아시아문명의 천명과 성신의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21세기적 가치를 만들어 낸다면 구글과 페이스북 이상의 글로벌 소셜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때 그 잠재적 경쟁자는 바로 옆나라 중국의 마윈 등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문명의 관점에서 카카오를 설명한다면 기업리더십은 <주역>의 '대장(大壯)괘'에 해당한다. 대장괘는 상괘가 진(震)이고 하괘가 건(乾)으로, 하늘 위에서 우레가 치면 그 소리가 크게 훌륭하므로 '대장(大壯)'이다. 카카오 기업리더십은 기업의 생애주기 측면에서 국내의 어떤 기업보다 크고 씩씩하다. 실제로 카카오는 2016년에 네이버와 함께 공정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에 지정됐고, 카카오뱅크도 설립해 금융산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마치 하늘에서 우레가 치는 형상이다. 카카오의 리더십은 단기이익 극대화보다는 산업 생태계를 여는 봄과 같이 창업기업과 중소기업을 씩씩하게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게 기업을 장대하게 하는 길이다. 공자는 "우레가 치면 위엄이 생겨 장엄하게 되니 자기를 이기는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천지의 질서가 아니면 한 발짝도 밟지 않고, 걷지 않아야만 바른 것이 되므로 '비례불리(非禮不履)'라고 했다.
 
홍대입구역에 위치한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 사진/뉴시스
 
카카오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해(解)괘'다. 글로벌 규제나 금융업의 한계 등 지금까지 카카오를 가로막고 있던 어떤 장벽이 점점 허물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한 예로 언론보도를 보면 카카오의 신성장동력인 카카오페이는 중국의 알리페이와 손잡았다. 당장 달라지는 것은 카카오페이의 결제규모다. 1400만명 가입자를 보유한 카카오페이의 지난해 상반기 누적 거래액은 1조60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알리페이가 힘을 합치면서 지난해 기준 카카오페이와 국내 알리페이 합산 거래액은 2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알리페이와의 협력은 국내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을 끌어안는 효과를 갖는다. 유커들은 다른 나라 관광객들에 비해 1인당 평균 지출액이 많은 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5년에 유커 1인당 평균 지출액(항공료 포함)은 331만원으로 조사됐다. 일본 107만원의 3배다. 카카오페이와 알리페이의 협력은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동아시아 중심의 변화와 온라인 결제시스템의 발전 모두를 상징하는 사례이다. 카카오의 사업영역은 기존의 전통적 제조업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새로운 상상의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적극적인 사업경쟁력 강화…"미리 행하므로 즐겁다"
 
카카오 계열사들은 '예(豫)괘'다. 예는 '미리 행한다'는 의미지만 '즐겁다'는 뜻도 있다. 준비가 잘되면 즐겁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에서 음악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카카오멜론 기능을 도입했다. 이는 플랫폼 통합작업이다.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위해 멜론 데이터베이스를 카카오미니에 탑재하기도 했다. 특히 카카오는 국내 최대 디지털 음악플랫폼인 멜론과 함께 음악과 음반유통, 음악 콘텐츠 투자·제작,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종합 음악기업 카카오M을 운영한다. 카카오는 적극적 투자와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 지적재산권과 콘텐츠를 담당할 핵심 자회사를 보유했다. 카카오는 이에 대해 "플랫폼은 플랫폼대로, 콘텐츠는 콘텐츠대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카카오 협력사들은 '진(晉)괘'다. 카카오의 기업리더십이 크게 성하면 그 협력사들은 반드시 나아가게 되므로 진괘로 이어진다. '진(進)'은 단지 진출한다는 의미지만 '진(晉)'은 나가아 밝음이 있다는 뜻이다. 카카오 협력사들은 편안하게 잘 다스리는 제후라고 할 수 있다. 협력사가 카카오 리더십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카카오의 협력사들은 기존 제조업 기반 비즈니스의 협력사와 다른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카카오페이와 알리페이의 만남은 온라인보다 확장하기 쉽지 않은 오프라인 가맹점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알리페이 가맹점이 곧 카카오페이 가맹점이 되기 때문이다. 가맹점주 입장에서도 신규 가맹 계약을 맺는 데 망설일 이유가 훨씬 줄어들게 된다. 2016년 말 기준 카카오페이 가맹점 수는 1700곳. 경쟁 서비스인 네이버페이 가맹점인 13만개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알리페이와의 제휴로 가맹점 수를 늘리는 것이 수월해질 전망이다.
 
2017년 7월27일 카카오뱅크가 대한민국의 2번째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출범했다. 사진/뉴시스
 
앞으로 유커들이 상품을 카카오페이-알리페이와 연동된 한국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되는 점도 주목할 효과다. 카카오페이와 가맹 계약된 티몬에서 알리페이로 상품을 사고,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상품을 배송받을 수 있다. 반대로 국내 이용자들은 알리페이와 가맹 계약된 해외 사이트에서 원하는 상품을 카카오페이로 결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 결제뿐 아니라 택시 호출과 호텔·병원 예약, 영화 예매, 공과금 납부 등 생활 서비스를 비롯해 자산관리와 각종 핀테크 사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카카오 가맹점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새로운 유형의 협력사 모델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카카오의 구성원들은 '수(隨)괘'에 해당한다. 이는 속마음에서 기쁨이 우러나 따른다는 의미다. 사람이 사람을 따를 때는 마지못해서 따르거나, 재물과 권력, 조직에 의탁해 따를 수도 있지만 참다운 따름은 수괘처럼 속마음에서 기쁨이 우러나 저절로 따르는 것이다. 카카오에서는 직급 대신 이름을 부르는 수평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또 모든 크루에게 법인카드를 준다. 법인카드는 하루에 사용할 금액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사용내역이 인트라넷을 통해 전 사원에 공개된다. 재물의 사용을 개인의 양심과 책임감에 맡기는 시스템이다. 카카오 복지의 백미는 휴가다. 카카오 구성원들은 3년 단위로 한 달간 안식휴가를 갖는다. 200만원의 휴가비도 나온다. 휴가는 본인이 원하는 날에 사유를 쓰지 않고 조직장의 승인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근무시간은 9시~18시와 10시~19시 중 하나를 선택해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다. 일할 때도 수면실이나 스탠딩 책상, 독서실 모양의 몰입공간 등 카카오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카카오의 기업문화는구성원들이 IT기업의 자유로움과 공유가치를 체화하도록 배려하고, 그렇게 되도록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런 내재적 과정들이 사업성과로까지 이어진다면 카카오는 동아시아문명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소셜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 임채원은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 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등 20여개 중앙·주정부의 정책 어젠다를 공동 연구하는 '비교어젠다 프로젝트'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참여 중이다. 이번 기획은 필자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연구와 실천을 토대로 동아시아 문명의 가능성과 미래에 관해 <뉴스토마토>에 격주로 총 12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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