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자본시장의 반칙왕들
2026-06-30 06:00:00 2026-06-30 06:00:00
이재명정부 출범 당시 2700대였던 코스피 지수가 1년 만에 9000선에 다가섰다. 그러나 일부의 환호작약(歡呼雀躍)이 다수의 비명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반도체·첨단 산업 위주로 증시가 급등하면서, 당장 주식시장에 참여할 시드머니가 없는 청년 세대에게는 깊은 소외감을, ‘삼전닉스’ 없이 여전히 과거 주가에 매여 있는 많은 주주들에게는 극심한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고질적 자산 양극화가 주식시장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인공지능(AI) 혁신에 따른 반도체 특수와 함께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추진된 자본시장 개혁이 오늘의 역사적 상승을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 평가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의 상승은 특정 대형주와 산업이 이끈 측면이 크고, 지수가 올랐다고 해서 한국 자본시장의 낡은 반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젠가 혁신의 불꽃이 사그라드는 순간이 오면, 말의 성찬에 그친 실효성 없는 개혁은 자산 양극화의 그늘만 더 짙게 드리운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새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법문만 바뀌었을 뿐, 이사회 풍경은 바뀐 것이 없다. 이로 인해 이사회에서 어떤 사외이사가 반대 의사 표시를 했다거나, 오너의 의사결정이 번복되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은 바 없다. 독립이사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독립’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감시와 견제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간 복잡한 출자 구조를 이용해 그룹 전체에 절대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전문경영인이나 주주에게 전가하는 기형적인 지배구조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비핵심 자산을 매각해 회사 빚을 갚는 대신, ‘유상증자’라는 손쉬운 수단을 이용해 주주들에게 경영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맹우(盟友)의 경영권을 지켜주는 백기사(white knight) 역할을 위해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을 외면한 채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의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이사회도, 실질적으로 심사하고 제어하는 감독당국도 보이지 않는다. 공사(公私)의 분별이나 경영상 합리성은 오너 일가의 친분 뒤로 밀려난다. 이들에게 공(公)은 사(私)를 위해 존재하는 장식에 불과한 것일까.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엄마 소를 샀는데, 송아지를 빼앗아 갔다”는 비유를 들며 중복상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중복상장 원칙 금지라는 방향만 제시되었을 뿐, 아직 시장이 신뢰할 만큼의 확실한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적 분할이든 인적 분할이든, 우리 재벌 그룹이 반복해 온 상당수의 분할 상장은 사업상 필요보다 지배구조 재편과 승계의 편익을 위한 방편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승계를 위한 편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회사 자금으로 매입한 자사주를 서로의 필요에 따라 맞바꾸고, 저가(低價)로 오너 일가의 개인 회사에 매도하게 하는 행태에까지 이른다. 형식은 회사 간 거래이지만, 실질은 오너 일가의 사익을 위해 회사 자산을 동원하는 행위라는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론의 감시와 정책당국의 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본시장 개혁을 위해 이뤄진 상법 개정이 실제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미지=챗GPT)
 
우리 주식시장에는 여전히 순자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PBR 1 미만의 저평가 기업들이 많다. 이 기이한 저평가의 배경에 오너 일가의 승계를 위한 의도적인 주가 누르기가 있다는 의심은 시장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를 막겠다며 호기롭게 발의된 ‘주가 누르기 방지법’과 대통령의 공언(公言)은 결국 공언(空言)으로 그치고, 국회와 정부의 캐비닛 속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다.
 
타석에 선 타자는 안타를 칠 수도 있고, 아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재벌 3세들은 처음부터 3루에서 태어났다. 우리도 타격 없이 3루에 서게 해달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1루부터 다시 뛰라는 ‘공정(公正)’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3루에서 태어난 자들이 내 타석까지 빼앗겠다고 나서는 ‘반칙’에 대해 반칙 선언조차 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대체 왜 존재하는가. 
 
천경득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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