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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채용비리 CEO 무혐의, 안도할 때 아니다
2018-06-18 08:00:00 2018-06-18 08:00:00
은행권 채용비리가 장장 8개월 만에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이날 6개 시중은행의 채용비리 혐의와 관련해 임직원 수십명을 기소했다. 최고경영자(CEO)급에선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불구속 기소됐으나,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무혐의로 결론, 사정당국의 칼날을 피했다.
 
 
금융지주 회장이 검찰 수사선상에서 비껴가면서 은행권은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다. 검찰 수사 결과만 놓고 보면 은행들의 방어 논리가 통했다. CEO는 단순히 합격 여부를 확인했을 뿐, 인사담당자들이 '알아서' 부정합격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CEO가 '혐의 없음' 결론을 받았더라도 은행권 전반에 뿌리내린 채용비리 전반에 대해 '면죄부'를 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시중은행의 채용비리 백태는 성차별, 학력차별에 이어 각종 청탁·로비까지 '가관'이다. 가장 많은 비리 유형이 내외부를 따지지 않는 추천 또는 청탁이고, 인사부에서는 청탁이 있는 경우 별도로 '청탁 대상자 명부'를 만들어 채용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관리했다.
 
특정 지원자를 위해 자격 조건을 임의로 변경하거나 점수를 조작한 은행도 있었고 내부적으로 남녀 채용비율을 4대 1로 설정한 은행도 있었다. 부행장의 자녀와 동명이인인 지원자를 합격시켰다가 최종 불합격시킨 웃지 못할 사례도 있었다. 이들 사례 모두 내로라하는 은행들 사례 일부분만 정리한 것이다.
 
이처럼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법리적으론 무혐의를 받았겠지만, CEO로서 내부통제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에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주기적으로 종합감사를 벌이면서도 채용비리의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한 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로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가 전환점을 맡은 가운데 최근 은행연합회는 '임직원추천제폐지', '필기시험 도입', '역량과 관계없는 요소로 인한 차별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마련했다.
 
임직원 추천이나 차별 금지를 내세운 것은 추천과 청탁 사이가 애매한 만큼 아예 진원지를 없애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 같은 모범규준이 모든 은행에 일괄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채용시스템의 전향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채용절차 모범규준은 강제가 아니라 권고 사항이다. 모범적인 규준을 만들었으니 참고해도 되고,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당장은 금융당국이 눈에 불을 켜고 있기 때문에 은행들이 모범규준을 따르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강제성은 옅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과거 금융사고 사례를 더듬어 봤을 때, 기소된 은행권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올 때쯤에는 채용비리에 대한 관심이 대부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에서도 재판부의 1심 결과까지 지켜보겠다며 한발 물러서 있다.
 
민간 금융사의 채용 규정을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더욱 옥좨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근본적인 채용 문화 전환은 금융사의 자율적 정화 기능에 달렸다는 얘기다. 금융권은 섣불리 안도할 때가 아니다. 불공정한 채용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를 기억하고,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시대상을 채용시스템에 반영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종용 금융부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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