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혁신·포용 정책금융 지지부진…'구조조정' 덫에 걸린 산은
구조조정 자금투입→자금부족→증자실패→소매금융 등 악순환 겪으며 사면초가
2018-09-11 07:00:00 2018-09-11 07:00:00
[뉴스토마토 최홍 기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취임한지 1년이 됐지만, 정책금융 방향에 대한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GM 등 구조조정 지원에 혈세를 쏟아부으면서 자금이 부족해졌고, 정부의 중소·중견기업 지원에도 악영향을 받게 됐다. 더구나 정부 증자가 담보되지 않자, 고금리 적금 상품을 내놓으면서 시중은행들로부터 '시장교란행위'이라는 비판의 눈초리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취임할 때부터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신성장 분야를 육성하고, 창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 산업구조 재편을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책금융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구조조정 이슈에 직면했을 때부터다. STX의 자구계획 합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고, 금호타이어도 더블스타에 매각시킨 이 회장이었지만, 한국GM 구조조정에서 8000억원을 투입하게 됐다.
 
지난 5월 한국GM 경영 정상화를 위해 GM과 산업은행이 약 7조7000억원를 지원했다. GM 측이 기존 한국GM 대출금 약 3조원 전액을 출자 전환하고, 약 3조9000억원를 한국GM에 대출 방식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이 신규 투자 7억5000만 달러(약 8000억원)를 투입하기로 한 대신, GM은 앞으로 5년간 지분 매각이 전면 제한되고, 이후 5년간은 35% 이상 1대주주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 또 산은이 한국GM 특별결의사항에 10년간 비토권을 유지하도록 했다.
 
문제는 한국GM에 8000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당장 정부의 정책금융을 진행하기 위한 자금조달에 애로사항이 생겼다는 것이다. 정부는 산업은행이 이미 수조원에 달하는 대우조선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는 점을 감안해 쉽게 자금지원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이동걸 회장은 "자본여력이 부족하고 수익도 열악해 빈곳간을 채워야 한다"며 "정부에 요청은 하고 있는데 정부의 재원이 한정돼 있고, 야당의 협조 문제도 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정부 증자는 지난 6월, 정부가 산은에 성장지원펀드 조성 자금 일환으로 1700억원을 투입한 것이 전부다.
 
결과적으로 기업구조조정 이슈에 매몰돼 4차산업혁명은 물론이고, 신성장 분야에 전혀 손을 못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함께 성장지원 펀드를 조성하고 있지만 이것 외에는 딱히 성과가 없는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이 기업 구조조정 현안으로 이제 막 중소·중견기업 및 벤처기업 지원에 뛰어들고 있다"며 "취임 1년이 지났지만 정부가 원하는 혁신성장 정책에 대해서는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동걸 회장은 부랴부랴 자금 조달을 위해 고금리 적금 상품을 내놓으며 소매금융에 뛰어들었지만, 오히려 논란만 키웠다. 산은이 은행권 최고 수준인 연 4.1% 금리를 제공하는 ‘데일리 자유적금’을 출시했지만,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제기한다. 강만수 전 회장 때의 산은은 민영화를 위해 소매금융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시중은행들은 '시장 교란 행위'라고 반발했다.
 
결국 이동걸 회장은 '구조조정 자금 투입→자금부족→정부 증자 실패→소매금융' 등의 악순환을 겪게 되면서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조직쇄신안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문제다. 산은은 출자회사관리위원회를 통해 연도별로 2016년 46개, 2017년 44개, 2018년 42개 등 비금융출자회사 132개를 3년 내 매각하기로 했다. 또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고위 임원이 적용 받는 공직자윤리법에 준하는 임직원 재취업 심사제도를 도입, 산은 퇴직 임원이 비금융출자회사에 재취업하는 ‘산피아’ 관행을 근절하는 내용도 담았다. 하지만 산은이 추진하려 했던 출자사 매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호반건설은 지난 1월 31일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모로코 사업의 손실이 드러나자 2월8일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했다. 또 산업은행은 KDB생명도 매각 시한을 2020년까지 미루고 기업가치 제고하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의 내부 혁신도 요원하다. 현재 수개월 동안 구조조정부문과 중소중견부문 부행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로 글로벌금융 및 기업금융 부행장이 겸직을 맡고 있다. 현재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기업구조조정 현안이 중요한 이 때에 한시라도 빨리 내부혁신이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이라는 큰 이슈를 그냥 겸직 형태로 간다는게 바람직한 형태는 아니"라며 "이동걸 회장이 내부 조직 등에 전혀 손을 못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정권의 성과연봉제에 대한 논란도 아직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 노조 측은 전 정권 때 성과연봉제에 대한 합의를 종용했던 부장급 인사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상황이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해당 상황에 대한 문제는 끝나지 않고 잔재가 남아있다"며 "당시 불법 인권유린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이동걸 회장은) 내부 조직 혁신은 요원하다"고 밝혔다.
 
그래픽/ 뉴스토마토
최홍 기자 g2430@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