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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1900년·1913년 맨해튼 거리와 석탄금융의 운명
2018-10-08 08:00:10 2018-10-08 08:00:10
두 해 전이다. 국회신재생에너지포럼(공동대표 이원욱·전현희 의원)에 참석해 '유엔미래보고서 2050'의 저자인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의 '에너지 혁명 2030'이라는 주제강연을 들은 바 있다. 당시 박 대표가 슬라이드로 보여준 두 장의 비교 사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1900년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 사진과 1913년 같은 거리를 촬영한 사진이었다. 1900년 사진에는 도로를 가득 메운 마차들 사이에 단 한 대의 자동차가 서 있었고, 1913년 사진에는 자동차가 도로를 가득 메운 사이에 단 한 대의 마차가 서 있었다. 단 한 대의 자동차가 있던 자리와 단 한 대의 마차가 서 있던 자리도 기막힌 우연처럼 같은 사진이었다. 
 
맨해튼 거리의 운송수단이 마차에서 자동차도 바뀌는 데는 채 13년도 걸리지 않았다. 아니, 3000년 이상을 이어온 마차의 역사는 단 13년 만에 끝났다고 해야 더 적확하다. 당시 자동차 가격은 1년치 월급으로 사람들은 구매할 엄두도 못 냈지만, 1908년 금융권의 자동차할부제도 도입은 당시 맨해튼 거리 풍경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실 금융업계는 자동차 산업이 이제 막 부상하기 시작한 1900년대 초 그토록 빠른 성장을 예측하지 못했다. 2륜 마차 사업에 너도나도 투자했고, 그 결과는 도미노 파산이었다. 
 
세계는 지금 발전원 측면에서 석탄발전(확장하면 화석연료)과 재생에너지 발전과의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 세계 전력의 40% 이상이 석탄발전에 의해 생산되고 있지만, 석탄발전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지구 생태계 공멸을 초래할 수 있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최대 주범으로, 기후변화와의 투쟁은 곧 석탄발전과의 투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는 80만명, 우리나라에서는 1600명을 조기사망시키는 초미세먼지 주범이기 때문이다. 석탄발전은 산업화를 위한 에너지원으로 한 시대를 책임졌지만, 이제는 더티 에너지(dirty energy)라는 오명을 받으며 조속히 퇴출해야 할 에너지원 1호가 되어 버렸다. 전 세계 시민사회는 물론 정부와 금융투자기관도 석탄발전 퇴출에 합세하고 있다.
 
특히 투자기관의 활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대응 기관인 350.org의 프로젝트인 '파슬 프리 캠페인(Fossil Free Campaign)'에는 985개(자산운용 규모 6조2400억달러)의 금융기관 등 기관투자자들이 석탄발전 투자 배제를 선언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 연기금도 150개가 합세했다. 그뿐 아니다. 독일 환경단체인 우르게발트(Urgewald)와 그의 파트너들은 유연탄 가치사슬에 참여하는 기업의 포괄적인 데이터베이스인 'Global Coal Exit List(GCEL)'를 개발해 석탄 퇴출 사이트(www.coalexit.org)에 제공해 은행과 투자기관들이 쉽고 빠르게 투자를 배제하거나 회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GCEL은 약 800개의 석탄 모회사와 1000개 이상의 관련 자회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에 반해 재생에너지는 적극 장려하고 있으며, 관련 기술도 진보되고 있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는 가격 경쟁력도 획득해 나가고 있다. 자연히 석탄발전은 이미 사양산업에 들어섰다. 1883년에 설립된 미국 최대 민간 석탄기업인 피바디 에너지사와 2위 석탄기업인 아치콜의 파산은 이를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탈석탄을 선언한 금융기관들은 석탄에 대한 대안투자로 재생에너지에 눈을 돌리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나라는 글로벌에서 거세게 진행되는 탈석탄 바람에 상대적으로 무풍지대(無風地帶)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탄발전에 지원하는 한국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을 대상으로 한 환경단체의 크지 않는 압력만 있었을 뿐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탈석탄 금융이라는 세계적인 조류에 무관심했고, 국내 환경단체의 활동에 눈과 귀를 닫고 있었다. 오히려 최근까지도 신규 석탄발전 건설에 적극 나서 자금줄 역할을 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2일 충남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열린 '탈석탄 친환경 에너지전환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환경부
 
이러한 국내 현실에서 지난 10월4일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이 '탈석탄'을 선언했다.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은 국내 3대 공적연기금으로, 금융자산운용액은 2017년 말 기준으로 각각 15조8404억원, 8조원이 이른다. 국내든 해외든 향후 석탄발전소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에 참여하지 않고, 발전소 건설 관련 회사채를 통한 투자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관련 기존 투자를 확대하고 신규 투자를 하는 등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지속가능투자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기후변화 저지를 위해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제한하고자 하는 인류의 공동 노력을 기관투자자로서 적극 지지하고 동참한다고도 천명했다.
 
두 기관의 탈석탄 선언은 국내 최초다. 이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글로벌적 대응에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국내 금융 풍토에 탈석탄 선언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린피스와 세계자연기금(WWF)은 즉각 환영과 지지 논평을 냈다. 아울러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국민연금 등 공적금융기관과 연기금의 반성도 촉구했다. 노르웨이 민간 연금인 스토어브랜드 자산운용부문 얀 에릭 사우게스타드 대표는 석탄발전의 좌초자산 가능성을 언급하며,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 소장은 빠르게 진전되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전환을 거론하며 '금융적 관점에서 현명한 결정'이며, '현명한 투자자'라고 지지했다.
 
그러나 석탄발전소를 안정적 수익을 내는 투자처라며 이를 거두지 않는 공적연기금과 공적금융 그리고 민간금융은 절대다수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이번 탈석탄 선언의 장을 마련하면서 그들이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걸 확인했다. 그러나 그들의 저항은 머지않은 장래에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자동차가 최초로 발명되었을 때 마차협회, 마부협회 등의 격한 반대가 있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석탄금융 대 탈석탄 금융·재생에너지와의 투쟁은 1900년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서 있는 단 한 대의 자동차와 1913년 같은 거리에 서 있는 단 한 대의 마차라는 사진 속 운명으로 결론 날 수밖에 없다. 그 변화의 기간은 13년이었다. 그리고 금융이 자동차할부제도를 통해 변화의 주된 역할을 담당했다. AI 시대, 융복합의 시대라는 지금,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현재 진행되는 에너지 전환은 그렇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전 세계 탈석탄 금융기관들은 이 변화의 속도를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변화를 추동하는 역할을 적극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은 1900년대 맨해튼 거리의 자동차 한 대라는 점을 다른 금융기관들은 통찰력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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