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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생활체육 활성화·프로스포츠 활성화 일조하고파"
축구선수 출신 변호사…"운동으로 단련된 정신력·인내심이 공부에 도움"
"학생 선수·학부모·지도자 만나 애로사항 해결에 역할…스포츠 관련 이해관계자들에 힘이 되어주고 싶어"
2018-12-10 06:00:00 2018-12-10 06:00:00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아직 국내 사회에서 운동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사례는 많지 않다. 엘리트 체육이라는 이름 아래 그간 '운동부'는 수업과 담쌓고 운동에만 매진했던 게 사실이다. 시작부터 진로가 정해지면서 운동만이 살길이었고 중간에 이탈하면 삶 자체가 힘들어졌다. 운동하다가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운동선수는 학업에 소홀하다'라는 편견도 생겼다. 김가람 변호사는 초등학교 시절 축구공을 차며 운동장을 누빈 축구 선수 출신이다. 중·고등학교 때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고 법조인이 된 현재는 국내 스포츠산업 발전을 위한 꿈을 지니고 있다. 김 변호사를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린 사무실에서 만나 국내 스포츠산업 발전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 주> 
 
사진/김가람 변호사
 
어떻게 축구에 입문했나.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선수를 시작했는데, 그때 아버지(김희태 FC 의정부 감독. 박지성을 발굴하고 안정환을 지도했다.)께서 아주대 축구부 감독이셨다. 당시 아주대는 많은 대회에서 우승했고 안정환·우성용·이민성·이장관 등 훌륭한 선수도 많았는데 아주대를 응원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수의 꿈을 꾸게 됐다. 
 
선수 생활은 얼마나 했나. 
 
서울 영희초·부산 연산초·서울 수서중·서울체고·서울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선수 등록은 대학교 때까지 돼 있기는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학업을 병행해 왔기 때문에 사실 선수생활을 대학까지 했다고 말하기는 겸연쩍은 부분이 있다. 포지션은 공격수이긴 하지만 선수로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영희초 6학년 때 맹호기 8강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것, 서울대 재학 중 연세대를 상대로 골을 넣었던 게 유일한 자랑거리다. 서울체고에서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을 많이 배려해주셨고, 덕분에 서울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선수로서 유망했는데, 학업을 택한 이유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가 아주대·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명지대 감독을 하셨다. 당시 유명한 선수들도 많이 봤지만, 선수를 그만두는 분들도 많이 봤다. 당연히 선수를 시작할 때는 아버지처럼 국가대표·지도자를 목표로 했었다. 어느 날 1994 미국 월드컵에 나간 23인의 출생연도를 살펴보니 동년배는 많아 봐야 5명이 채 되지 않았고, 20대·30대 초중반 중 어떤 출생연도는 아예 없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 3위를 해서 전국대회를 나갔는데 내리 2패를 당하고 예선 탈락했다. 전국에 있는 모든 1984년생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까마득했다. 이때 아버지께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길을 추천해주시며 해설가·교수·심리 트레이너·에이전트·행정가·기자 등 여러 길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또 운동선수 중에 공부를 제일 잘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학업을 택했다.
 
공부하는 데 운동선수 경험이 도움 되던가.
 
정신력이나 인내심이 늘었다. 선수를 하다 보면 억지로 뛰어야만 할 때가 있는데 뛰지 않으면 동료가 제 자리를 메워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괴로운 순간도 참고 견디면 극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수학의 정석'을 처음 풀었을 때 몸이 배배 꼬였는데 운동할 때를 생각하며 참아냈다. 한 문제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13시간을 넘게 고민하다 풀어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자신감이 붙었다. 당시 연세대 치대에 다니던 형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형이 중·고교 때 공부를 할 당시 저는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제가 더 힘들었다. (웃음) '형이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갈 정도면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 같다. 어차피 누구 엉덩이가 의자에 더 오래 붙어 있느냐의 싸움인데 운동할 때만큼 힘을 쏟는다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법률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리나라가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프랑스로 축구 유학을 간 적이 있었다. 함께 유학 갔던 선배와 에펠탑 아래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자기도 축구선수였다며 같이 하자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 프랑스 사람들 실력이 선수 출신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초등학교 때 클럽 축구를 했던 것이었다. 그때 생활체육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됐고 우리나라도 생활체육이 자리 잡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를 그만둔 사람도 다른 진로를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진학한 후 저와 같이 프로로 성공하지 못하는 선수와 그들의 부모들 까지 책임져야 하는 지도자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고민했었다. 상담사가 되면 그들을 직접 만나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 심리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졸업을 앞두고 운동선수들에게 심리상담을 해주시던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대학원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분께서 '선수·학부모·지도자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이라면, 변호사가 돼 그들의 현실적인 일까지 대신 해결해줄 수 있다'고 말해주셨다. 그 후 변호사라는 직업을 찾아봤는데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았고, 변호사가 없어서 하지 못하는 일들도 참 많았다. 변호사가 되는 게 제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판정시비·승부조작 등이 갈수록 늘고 있다. 대책이 없겠나. 
 
국제대회 판정시비의 경우, 요새는 스포츠법률전문가가 많아지면서 규정 미숙지로 인해 선수가 불이익을 받는 사례는 적어지고 있다. 다만, 그 규정을 직접 적용받는 선수와 지도자가 스포츠 규약을 더욱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협회나 연맹의 도움에 의존하면 그 규정을 지킬 수 있을 뿐인데 선수와 지도자가 그 규정을 정확히 이해하면 더욱더 철저하게 대비할 수 있고 그 규정에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완을 요구할 수도 있다. 사후에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사전에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수와 지도자 나아가 학부모에게까지 관련 규정을 설명해주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구해 보완해 나가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좋겠다.  
 
에이전트 시장이 커지고 있다. 도전 의사는 없나. 
 
직접 에이전트 시장에 뛰어들기보다는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겪는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 싶다. 현재도 에이전트·관련 기관·선수들에게 자문을 해주고 있는데, 음지에서 이뤄지던 일들이 양지로 나오게 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야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프로스포츠는 이윤추구 외의 목적으로 탄생·운영돼 온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선수·에이전트·구단·협회를 불문하고 기존 관행대로 업무를 처리하더라도 관련 법규에 저촉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저의 경우 단순히 관련 법규만 살펴보기보다는, 그러한 행위가 어떠한 연유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 이해관계자들에게 더욱 적절한 자문을 해드릴 수 있을 것이고, 또 이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스포츠 관련 이해관계자들에게 힘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자문을 요청받으면 힘닿는 한 도와드리고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인턴을 할 때 한 변호사님으로부터 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법률 분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들었다. 프로선수만 해도 구단과 전속계약 관련 분쟁에 대비해 노동법·공정거래법을 알아야 하고, 매니지먼트 업무에 대비해 지식재산권법을 알아야 하며, 그들이 법을 위반해 처벌을 받을 때를 대비해 형사법도 알아야 하고, 심지어 가정사를 대비해 이혼·상속·증여와 관련된 가족법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변호사가 된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기 위해 노력해 왔다. 민사·형사·행정·가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각종 소송과 자문 업무를 수행했고, 지식재산권 전문 부티크 로펌에서도 근무하며 일을 배웠다. 이후 노동법·공정거래법·조세법·금융 관련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일했고 지금은 '법무법인 린'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직 일반적인 소송과 자문 업무 비중이 많은 편이지만, 대한축구협회 풋살연맹·경기 포천시체육회·한국축구과학회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차츰 학생 선수·학부모·지도자를 만나는 자리를 늘려 가고자 한다. 운동을 잘하면 잘하는 대로, 또 못하면 못하는 대로 나름의 애로사항이 있다. 짧게는 목전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드리고, 길게는 생활체육의 활성화와 더불어 프로스포츠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해나가는 데 일조하고 싶다. 
 
김가람(가운데) 변호사가 서울 영희초등학교 6학년이던 지난 1996년 5월11일 열린 맹호기 서울시초등학교 축구대회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사진/김 변호사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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