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2050)⑬포용국가의 비전, '삶의 질 10위'와 '세계 5대 강국'
한국은 제조업 중심 경제에서 데이터 경제와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갈림길에 위치
1인당 국민소득 늘리는 것보다 사회지표와 환경지표를 강화하는 정책에 중점 둬야
입력 : 2019-01-21 07:00:00 수정 : 2019-01-21 07:00:00
지금 이대로 국정운영을 계속한다면 한국에는 미래가 있을까. 2017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를 넘었다. 한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11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간 어느 국가도 성취하지 못한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들은 이대로의 한국에서는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익숙한 발전과 성장의 패러다임으로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다. 이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질적 전환 요구되는 대한민국…'죽음의 계곡' 지나야

 
표면적으로는 지난 30년 동안 한국 경제의 원동력이 됐던 조선과 기계 등 제조업이 붕괴되자 경제적 불안감이 생겼다. 그러나 불안감의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사람들은 더이상 성장주의와 경제지표로 제시되는 국가 목표에 동의하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이 5만~8만달러가 된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대다수 시민들은 한국 사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원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를 바라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정책담론으로 자주 언급되는 게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선순환'이다. 사실 두 정책은 늘 선순환했다. 박정희 시대에도 경제성장이 사회정책의 발전에 기여했다. 참여정부에서는 두 정책의 균형발전론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지금은 선순환과 균형발전을 넘어설 담론이 필요하다. 바로 '경제정책에 대한 사회정책의 우선성'이다. 사회정책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만 경제정책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미래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누에-나비전략'은 개인이나 사회가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으로 변할 때는 '죽음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에는 뽕잎을 먹으며 5살까지 자라다가 나비로 변태하기 직전 고치로 변한다. 이는 질적 전환을 위한 필수과정이다. 사회가 질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 경로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발전국가에서 포용국가로 질적 전환할 것인지 기로에 섰다. 제조업 중심의 경제에서 데이터 경제와 생태문명으로 나아갈 것인지 갈림길에 왔다. 이 단계에서는 한 차례 어려운 고비를 지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국정운영에서 성찰적 리더십과 예방적 거버넌스를 갖는다면 거대한 도산과 대량실업 없이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죽음의 계곡을 지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발전국가에서 포용국가로 질적 전환할 것인지, 제조업 중심의 경제에서 데이터 경제와 생태문명으로 나아갈 것인지 갈림길에 왔다. 사진/언스플래시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를 넘으면 삶이 나아질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삶의 질은 29위다. 이를 보면 장차 30년간 한국의 국가리더십이 무엇에 정책의 중점을 둬야 할지 분명하다. 국가비전은 'OECD 삶의 질 10위(Better Life-10)'에 진입하는 것이어야 한다.

'OECD 삶의 질' 지표서 불평등 정도는 38개국 중 중간

 
2011년부터 OECD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더 나은 정책(Better Policies for Better Lives)'을 추구하고자 11개 분야별로 회원국의 삶의 질을 측정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열린 유엔총회에서 의장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그간 국가 간 삶을 비교하는 데 사용된 1인당 국민소득이 쓸모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에게 대안적 지표를 개발할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물로 나온 게 '스티글리츠 보고서'인데, 삶의 질에 관한 지표에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바탕으로 OECD는 '삶의 질 지표(Better Life Index)'를 만들었다. 이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결과다. 이미 글로벌 동향은 경제적 가치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스티글리츠 보고서'를 통해 삶의 질에 관한 지표를 만들 때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플리커
 
2018년 기준 OECD가 11개 분야에 대해 측정한 한국의 실태는 분야별로 들쑥날쑥한 불균형을 보여준다. 첫 번째 지표인 주거에 관해 한국의 삶의 질은 38개 회원국 가운데 25위다. 주거는 물질적 삶의 중요 요소이며 안정감을 확보하고 사생활을 보호하는 데 필수다. OECD는 개인당 방의 개수로 주거에 관한 삶의 질을 측정한다. 한국인이 느끼는 주거의 질은 낮았다. 반면 놀랍게도 주거 지출은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구 국가들은 주로 월세 지출이 많지만 한국은 자가 주택비율이 높고 전세가 많아서 매달 지출하는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OECD는 주택 담보대출 등은 금융소득 분야의 비용으로 계산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한국은 주거 지출이 가장 적은 나라로 분류됐다.

두 번째 지표인 소득은 자산을 줄이거나 부채를 늘리지 않으면서 소비할 수 있는 최대 여력을 측정한다. 구체적으로는 교육과 의료서비스 등 정부로부터 받은 사회적 현물 이전을 더하고 가구가 부담하는 소득세 등을 공제하며 소비자본재의 감가상각분을 뺀 금액이다. OECD에 따르면 소득 중 가구순조정가처분소득에서 한국은 23위다. 가구의 금융부채를 제외하면 21위다. 소득의 사회 불평등 지표로는 19위에 해당한다. 토마스 피케티가 분석한 상위 10% 인구의 소득비율이 45%를 넘어선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OECD 지표를 근거로 이야기할 경우 한국의 불평등 정도는 38개 회원국 가운데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미세먼지와 하천오염은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한 수준
 
일자리 지표 중 고용률은 22위다. 이것은 15세~64세 인구 가운데 지난주 1주일 이상 고용된 사람의 비율인데 한국은 66.1%다. 장기실업률은 피고용자와 실업자를 합한 노동인구 중 1년 이상 실업인 사람의 비율이다. 한국은 '0%'로 1위라는 의외의 통계치를 보여준다. 이는 그만큼 현재 OECD 통계도 불완전하다는 방증이다. 개인별 수입은 전일제 임금근로자에 준하는 사람의 연간 평균임금으로, 한국은 3만2399달러로 24위다. 노동시장 불안정은 실업에 따른 예상 소득의 상실 정도를 의미한다. 한국은 2.4%로 8위다. 불평등 부문처럼 일자리 분야에서도 한국은 전체 회원국의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교육 부문 가운데 교육 이수 지표는 13위다. 이는 25세~64세 중 적어도 고등학교 정도에 해당하는 상급 중등교육을 이수한 성인의 비율이다. 학생의 인지적 역량은 5위다. 기대 교육기간은 5세 아동이 39세에 이르기까지 생애기간 동안 경험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정규교육 기간인데 한국은 17.4년으로 18위다. OECD가 측정한 학생의 역량은 주로 초·중·고 학생들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한다. 대학과 대학원에 대한 것은 생략됐다.

시민참여 부문 중 규제정책과 법 등을 만들 때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정도를 측정했더니 한국은 14위였다. 투표권을 가진 사람 중 투표한 사람의 비율을 비교하면 11위다.

공동체 부문은 전체 회원국 중에서 꼴찌다. 이는 주관적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지지로 측정된다.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연결망이 얼마나 튼튼하냐다. 한국의 사회적 지지 연결망의 질은 75.9%다. 다른 OECD 회원국과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꼴찌지만, 절대적인 수치로 따지면 사회적 지지가 생각만큼 낮은 수준은 아니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이는 문화권에 따라 주관식 문제에 대한 반응이 다른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OECD '삶의 질' 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미세먼지와 하천오염 등 환경 부문에 대한 평가가 38개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사진/뉴시스
 
환경 부문에서 대기오염은 OECD의 대기오염 노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측정한다. 한국은 38위로, 꼴찌다. 수질 만족도는 26위다. 이는 거주하는 지역의 수질환경에 대한 주관적 평가다. '당신이 사는 도시 또는 지역의 수질에 만족합니까'라는 질문에 관한 응답률이다. 한국은 미세먼지와 하천오염 등이 OECD 중 가장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건강 부문에서 기대수명은 현재 연령별 사망률이 계속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평균 수명을 계산한 것으로 한국의 기대수명은 82.1세, OECD 회원국 중 11위다. 반면 15세 이상 인구 중 건강 상태가 '좋다' 또는 '그 이상'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32.5%로 꼴찌였다.
 
공동체와 삶의 만족도, 일과 삶의 조화 부문은 최하위권

 
삶의 만족도는 사람의 삶 전체에 대한 평가를 반영한 것인데 30위였다. 안전 부문에서 살인율은 인구 10만명 중 폭행으로 인한 사망자 비율로 24위다. '야간에 혼자 걸어갈 때 얼마나 안전하다고 느끼느냐'고 물어본 질문에 대한 응답률은 63.9%로 26위였다.

일과 삶의 조화 부문에서 주당 근로시간이 50시간 이상인 임금노동자의 비율은 20.8%, 35위다. 전일제 노동자가 하루 중 여가와 개인돌봄 등에 쓴 시간은 14.7시간으로 26위다.
 
2018년 OECD 삶의 질 지표를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종합 순위가 38개 회원국 중 29위를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부문별로 보면 상위권에 있는 것도 있지만 꼴찌 또는 최하위권에 있는 지표도 있다. 11개 분야 중에서 어떤 분야가 취약한지 살펴보면 한국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가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분명해진다. 공동체와 삶의 만족도, 환경, 일과 삶의 조화 분야 등에서 한국은 거의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한국은 소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지표와 환경지표를 강화하는 정책에 중점을 둬야 한다.
 
2018년 9월6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포용국가 전략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 사회는 국가운영의 우선 순위가 바뀌어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2050년을 바라보는 2019년의 국가비전은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의 우선 순위를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 근거는 OECD 삶의 질 지표가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 한국은 성장이 정체됐고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적 불안이 증가하는 가운데 정책의 초점을 사회정책에 둬야 할지, 경제정책을 우선해야 할지 방황하고 있다. 한국의 2050년 국가비전은 OECD 삶의 질 기준 29위인 나라를 10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재설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사회경제적 선순환을 통해 경제부문도 세계 5대 강국(G-5)의 올라설 수 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삶의 질이 경제성장보다 우선하는 정책적 전환이 새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15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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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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