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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삼성 준법감시위, 행운을 빈다
2020-02-05 06:00:00 2020-02-05 06:00:00
삼성그룹의 윤리경영을 감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준법감시위원회가 곧 출범한다. 대법관 출신인 김지형 변호사가 위원장을 맡고 법조계, 시민사회, 학계 등 외부 인사 중심으로 7명으로 구성된다.   
 
김지형 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완전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약속했다. 이 부회장은 아울러 삼성을 대대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한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주요 7개 계열사들과 협약을 맺고 감시하게 된다. 최고경영진의 법위반 행위를 직접 신고받고 조사하는 권한도 갖는다. 감시 대상에는 하도급 거래와 일감몰아주기 외에 노조와 경영권 승계 문제 등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지형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윤리경영 파수꾼, 준법 감시자 역할을 하는 데 모든 역량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연히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미덥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준법감시위원회 출범과 관련해 제기되는 가장 큰 의구심은 이 부회장의 재구속을 면하기 위한 ‘면피용’이라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파기환송에 이어 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재판을 다시 받고 있다. 이번 재판에서 다시 구속되는 사태를 모면하는 것이 황급한 과제이다. 
 
때마침 지난해 10월 열린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몇 가지 '숙제'를 내줬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말하자면 재판부의 요구를 삼성이 수용한 결과이다. 손바닥이 잘 마주친다. 그렇게 요구하고 화답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이후 재벌개혁과 공정경제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재벌 총수에 대한 시각은 상당히 복잡해 보인다. 원론적으로야 잘못을 저지른 총수를 단죄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경제상황이 그것을 어렵게 한다.   
 
더욱이 재벌이라고 다 같은 재벌이 아니다. 규모가 비교적 작은 재벌에 대해서는 정부도 사법부도 단죄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이를테면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지난달 22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에 비해 삼성 같은 대재벌의 경우 칼로 두부 자르듯 단죄하는 것은 이래저래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더욱이 문 대통령이 강조하듯이, 지금은 경제성과가 간절히 필요하다. 따라서 재벌과 가까이 지내면서 투자와 고용을 이끌어내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러므로 이 부회장이  앞으로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구속을 모면한다고 해도 결코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 다음이 궁금하다. 여러 가지 물음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만약 이 부회장이 정말로 재구속을 모면한다면, 그 후에도 삼성의 태도는 변함없을까? 준법감시위원회 같은 기구를 둘 필요가 없어졌다고 여기고는 없애고 싶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가 어머니의 간섭을 거북하게 여기고, 영국의 국왕 헨리 2세는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켓을 언짢아 했다. 삼성 역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세간의 시선 때문에 곧바로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는 그대로 두되 사실상 형식적인 기구로 전락시킬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무난하게 유지된다고 해도 한계는 있다. 이를테면 과거 무리하게 성사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이제와서 원위치시킬 수 있을까? 이뤄진 것은 해체될 수 없다는 옛말도 있다. 하거늘 이제 와서 무엇을 어찌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특검 당시 국민에게 한 기부 약속이나마 지금이라도 이행하게 할 수는 있을까? 그것이라도 되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오래도록 잘 운영되고 성과를 낸다면야 물론 바람직한 일이다. 삼성을 위해서나 국가경제를 위해서나 상서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소박한 희망으로 끝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런 희망대로 되려면 인간의 힘만으로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행운의 여신이 도와줘야 될 것 같다. 
 
로마 시대 시인 오비디우스는 재치 넘치는 작품 <로마의 축제일>에서 정의의 여신이 지구상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 하늘로 올라갔다고 읊었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행운의 여신은 아직까지 지구상 인간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바로 그 행운의 여신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잘 보살펴주기를 기원하고 싶다.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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