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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선택적 정의' 집착증
2020-04-06 06:00:00 2020-04-07 08:51:03
“고소 대리는 불기소, 피의자 대리는 기소.”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 그렇게 많지 않을 거다. 
 
변호사는 고소 대리인으로서 검찰 수사를 시작하게 하기도 하고, 피의자 대리인으로서 피의자 편에서 방어를 하는 입장에 있기도 한다. 고소 대리인이라면 당연히 결과가 ‘기소’로 끝내야 성공이고, 피의자 대리인이라면 ‘불기소’처분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하지만, 판사출신을 포함해서 소위 검찰 출신이 아닌 변호사들이 검찰 단계에서 사건을 맡을 때 대개는 그 결과가 거꾸로 나오는 일이 많다. 왜 그럴까. 그들이 검사 출신만큼 실력이 없어서일까? 
 
방송에 같이 출연하기도 하고, 예전부터 재판을 통해 알고 지냈던 어떤 판사 출신 변호사가 있었다. 하루는 모 방송국 대기실에서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물으며 담소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분 왈, ‘보통 옷 벗고 처음 맡는 사건들은 이심전심으로 양해가 이루어져 웬만하면 잘 해결되기 마련인데, 검찰 사건은 참...’ 
 
그 분 말의 요지는, 본인이 옷 벗고 처음 맡은 검찰 고소대리 사건에서, 분명히 법리적으로는 기소가 되어야 할 사건을 맡았는데, 아무리 증거 등 잘 챙겨서 말해도 주임 검사가 눈도 깜짝 안하더니 결국 불기소 처분을 내렸단다. 그런데, 변호사들끼리 의논 후 똑 같은 내용으로 검찰 전관에게 항고 사건을 맡겼더니 너무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고 고소인이 원하던 바대로 ‘기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말미에 하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법원에서는 이런 저런  논쟁 벌여가며 합리적 반박이라도 할 수 있는데, 이것 참... 전관 부장 딱지 뗀지 얼마 안된 나도 그런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야.. ”
 
검사들한테 물어보면 “그런 일은 없다. 말도 안 된다. 네가 실력이 없어서겠지.”라고 손사래를 치거나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변호사를 실력 없는 사람으로 몰아가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게 다 ‘선택적 정의’에 집착하는 검사들의 가치관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은 ‘검사’에게만 오랫동안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기소권과 수사지휘권을 주었기 때문에,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들은 소위 자기네들 ‘꼴리는 대로' 선택한 정의를 자신의 기준에 맞게 처리해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검/언 유착 대란’, 혹은 ‘조국vs윤석열 대전’ 모두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택적 정의의 한 결과다. 
 
구조적으로 보면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 사기사건, 예금잔고위조 등 사문서위조 사건, 위증사건 및 부인 김건희씨의 각종 관여 의혹 등은, 조국 전 장관의 부인 표창장 위조사건, 5촌 조카 관련 투자사건 등과 같은 맥락이다. 이 두 사건이 서로 구조가 다르다거나 밝혀진 바가 다르다거나 하는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데, 두 가지 사건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는 매우 다르다. 언론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가을에 있었던 그 엄청난 사건의 소용돌이와 파장을 돌이켜 보면, 현재 윤 총장이 ‘일체의 보고를 하지 말라’고 말한 이후 이루어졌다는 윤 총장 장모에 대한 불구속 기소는 참으로 보기 민망할 정도이다. 
 
검찰이야 그렇다 치고, 당시 언론들이 특히 조국 전 장관 사건에 대해 보였던 매우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보도 경쟁은 사실 정상적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물론 언론 입장에서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이 좋은 취재 소재였기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지만, 당시 사태를 촉발시킨 원인 중 하나는 ‘청렴결백’과 ‘순결성’을 강조했던 조국이 보여주었던 ‘위선의 민낯’이 너무 실망스러워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윤 총장을 둘러싼 소위 ‘선택적 정의구현’에 대해서 언론들이 보여주는 ‘소극적인 선택적 취재와 보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윤 총장 역시 조국 전 장관 못지않게 ‘청렴결백’과 ‘순결성’을 강조해 왔었고, 마찬가지로 너무 실망스러운 ‘위선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채널 A 취재 기자와 검찰의 유착을 보여주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MBC 보도를 통해서 나왔지만, 사건의 본질인 검찰의 유착과 기자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마치 노회찬과 삼성 장학금 검사 명단 사건 같은 일이 또 다시 벌어지고 있다. 해당 검사장이 이를 부인했다거나 취재기자 개인의 일탈로 보고, 별 문제 아니라는 전제하에, 오히려 MBC가 부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친 조국 성향의 전과자를 내세워 검찰을 공격하고 있고, 특히 현재 기소되어 있고 검찰을 싫어하는 열린 민주당 인사들이 선거를 위해 해당 사건을 이용하고 기획했다는 취지이다. 
 
'아전인수'라는 말이 있다. 검찰의 선택적 정의 실현 집착증과, 언론 및 선거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건의 본질이 호도되고 왜곡되는 일만은 보고 싶지 않다. 100퍼센트 절대적 정의는 존재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희망은 가질 수 있는 세상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노영희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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