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중은행 담보인정비율(LTV) 담합 의혹 관련 제재 결정에서 금융당국 의견서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LTV는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운용하는 정책수단인데요. 은행들의 LTV 책정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행정지도가 미치는 영향력 등이 고려될 경우 제재 양형 기준이 낮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차기 정부로 공 넘어가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는 KB·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의견서 제출 기한을 내달 20일까지 6주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은행 측에서 의견서 제출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신청한 연장 요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달 18일 각 은행에 LTV 담합 행위를 제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보냈습니다. 심사보고서를 전달받은 은행들은 공정위 판단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정부가 제시한 당초 마감일은 지난 9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은행들이 은행연합회를 통해 회신 기한 연장을 요청했고, 공정위가 이를 수용한 것입니다. 의견 수렴 마감이 다음달로 미뤄지면서 최종 제재 수위 결정 역시 사실상 하반기로 늦춰졌는데요. 이로써 LTV 담합 의혹 사건은 오는 6월 출범하게 될 차기 정부에서 매듭을 짓게 됐습니다.
LTV는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담보 대비 대출해줄 수 있는 한도를 나타내는 비율입니다. 4대 은행은 7500개에 달하는 LTV 자료를 공유한 뒤 이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며 시장 경쟁을 제한해 부당 이득을 얻고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한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를 받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은행들이 정보 공유를 통해 LTV를 낮춰 잡아 담보보다 더 비싼 대출을 받도록 했다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대출받은 차주의 실제 피해 여부가 주요 쟁점입니다. 공정위는 정보 교환으로 대출 심사 당시 '유효담보비율'이 낮게 설정돼 추가 신용대출을 유도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은행들이 정보 공유를 통해 LTV(담보인정비율)을 낮춰 잡아 차주들이 더 비싼 대출을 받도록 유도했다고 보고 있다. 서울시내 시중은행에 주택담보대출 관련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금융위 '반박 의견' 표출 관심
심사보고서를 전달받은 은행들은 공정위 판단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의견서에는 그간 은행들이 주장해온 대로 LTV 정보가 사실상 공개된 것과 같고, 부당이익이 없었다는 내용이 실릴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은행들은 "지역과 자격에 따라 LTV를 제한하는 금융당국의 행정지도를 따랐을 뿐"이라는 내용도 포함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 의견서도 공정위에 전달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새 경제팀이 구성되면 LTV 담합 의혹 사건이 새로운 분기점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금융위는 공정위에 보낼 은행 담합 제재 반박 의견서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했지만, 협의가 필요하면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른 관계자는 "부처 간 갈등으로 비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일 뿐 금융위가 반박 의견을 충분히 낼 만한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간 금융당국이 해당 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한 것도 현 정부 기조에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은행권을 향해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은행이 서민과 소상공인을 상대로 과도하게 이자를 받고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입니다. 고금리 국면이 이어지면서 '종노릇', '이자 장사', '약탈적 영업' 등 비난 발언 수위가 계속 높아졌고, 금융당국 수장들도 이 같은 기조에 발을 맞추기 바빴습니다.
공정위의 LTV 담합 의혹 조사도 은행 이자장사 비난 기조에서 시작됐습니다. 지난 2023년 2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통신 분야의 과점을 해소하고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자 공정위는 4대 은행과 NH농협·기업은행 현장조사를 벌여 대출 관련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차기 정부가 출범한 이후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은행 LTV 담합 제재에 대해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공정위 제재에 상당한 반감
금융위도 내부적으로는 공정위 제재에 반감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LTV 비율 자체가 애초에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운용하는 정책수단이기 때문입니다. LTV 규제 완화 또는 강화는 거시건전성 정책으로서 정부가 결정해온 사항인데 공정위가 경쟁법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
최근 가계대출 시장에서는 LTV 영향력이 과거보다 크게 줄기도 했습니다.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총량 규제가 강화되면서 LTV 수치가 높더라도 실제 대출 가능 금액은 제한받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시장 영향력이 약화된 LTV 정보를 공유한 행위까지 담합 논란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만약 공정위가 제재하더라도 법원 단계에서 금융당국 영역이라는 점 등이 고려돼 제재 수위나 판단이 뒤집힐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상 과징금은 위반 행위 관련 매출액에 해당 행위의 중대성에 따른 부과 기준율을 곱해 산정됩니다. 공정위가 LTV 관련 매출액에 기존 신규 대출 취급액에 더해 기한이 연장된 대출 규모까지 새로 추가하면서 과징금이 1조원대를 넘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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