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석유화학이 충남 대산의 나프타분해설비(NCC) 통폐합으로 구조조정의 첫발을 뗀 반면, 철강 업계는 50% 관세 압박에도 재편 논의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기업 사이 합의가 좀처럼 성립되지 않는 '죄수의 딜레마'가 핵심 걸림돌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담합 리스크에 '죄수의 딜레마'까지
30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부는 철강 감축·재편 논의에서 '담합 리스크'를 피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기업끼리 생산량이나 감산 시점을 직접 논의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경성 담합'으로 판단될 위험이 있습니다.
산업부는 앞서 롯데케미칼과 HD현대의 대산 NCC 통합 과정에서 활용된 '클린룸' 협의 모델이 철강에서도 사실상 필요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기업들 사이에서 경쟁 민감 정보가 직접 오가지 않도록, 정부가 중개자 역할을 합니다.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범용 제품은 전체 설비의 10~20%를 통폐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철강업계도 감축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습니다. 중국발 공급과잉에 더해 트럼프발 50% 관세,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3중 악재를 맞닥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가 어떤 설비를 얼마만큼 줄일지'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충돌합니다. 범용 제품을 만드는 업체마다 제품 구성과 공정 구조가 크게 달라 감축 부담이 특정 회사에 집중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먼저 줄이는 쪽만 손해를 보는 '죄수의 딜레마'까지 작용하면서, 어느 회사도 선뜻 감축안을 내놓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잉 공급 문제는 모두 알지만 내 몸집을 줄인다는 결정은 또 다른 문제"라며 "공정거래위원회 제재 위험성 때문에 먼저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클린룸 협의를 통해 담합 리스크가 해소된다 하더라도 실제로 해봐야 아는 일"이라며 "기업들이 서로 다른 공정에 흩어져 있어 각자 이해만 따지게 되는 만큼, 전체 벨류체인(생산 구조)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깅조했습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철강재 생산은 4.1% 감소했고 내년에도 2%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철근의 경우 국내 수요가 국내 생산능력(1200만t)의 50~60%에 불과해 절반 가까운 설비가 사실상 가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피츠버그에 본사를 두고 있는 US스틸 전경. (사진=AP연합뉴스)
"단순 감축 안돼…핵심은 제품력"
반면 일본 철강업계는 2020년대 초반부터 과잉 설비를 선제적으로 정리하고 동시에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체질을 바꿨습니다. 일본제철은 약 5년간 15기에 이르는 고로(용광로) 설비 중 5기를 폐쇄했고, 지난해 8%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습니다.
현재 일본제철의 목표는 '10년 후 세계 1위'입니다. 지난 6월 미국 철강기업 US스틸을 인수한 데 이어, US스틸이 자체 생산하지 못하는 전기강판 등에 최첨단 설비 투자를 추진하고 신규 제철소 건설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미국 2위 고로 철강사인 클리블랜드클리프스의 점유율을 흡수해 현재 15% 수준인 시장점유율을 2배로 늘리겠다고도 밝혔습니다. 국내 업계에서는 "일본이 앞서나간 10년을 우리는 그대로 허비했다"는 뼈아픈 평가도 나옵니다.
산업부는 내년 초에는 구체적인 감축 방안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부 명예특임교수는 '단순 감축론'에 선을 그었습니다.
민 특임교수는 "방학 숙제를 미뤄 놨다 개학 전날 밤새우는 격"이라며 "제품력은 그대로인데 양만 줄여봐야 가격 경쟁력이 좋아지지는 않는다"고 직격했습니다.
그는 "회사가 부도 난 다음에 하는 구조조정은 쉬운데, 지금처럼 부도 전에 하는 건 매우 어렵다"며 "제품 포트폴리오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어떤 구조조정도 약발이 오래가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