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유라시아)(9)북극항로, 러시아와 한국을 다시 잇는 길
러시아 중심 북동항로 경쟁 본격화…전략 가치 부상
야말·무르만스크·블라디보스토크 잇는 에너지·물류 벨트
러시아에서 멀어지는 한국…사라져가는 협력의
2026-03-13 06:00:00 2026-03-13 06:00:00
은사마Ⅱ(은퇴한 사람들의 해외 마을 만들기)는 단순한 은퇴자 주거 모델이 아닌, 초고령 사회와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와 개인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새로운 국가 전략입니다. 해외 거점에 형성될 은퇴자 커뮤니티는 항공·관광·헬스케어·부동산 산업을 잇는 신수요를 만들고, 동시에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의 교두보가 됩니다. 거점도시는 결국 한국형 개발협력(ODA), 글로벌 공급망 전략, 문화 교류의 실제 인프라가 됩니다. 은사마Ⅱ의 1차 거점은 라오스 비엔티안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두 도시 거주자들의 기고를 통해 이 전략의 향후 전개 방향을 살펴봅니다. 본 기획에서는 한국 기업의 극동 러시아 진출 교두보이자 항만·물류·관광·에너지 산업이 교차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펼쳐지는 한러·유라시아 교류의 현장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편집자 주)
 
지난 글에서 고대 발해부터 구소련 공화국 시절, 러시아 연방으로의 격동적 변화기를 거쳐 21세기 초반까지 오랜 세월 동안 극동 러시아와 한반도가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며 협력을 이어왔는지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글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극동 러시아가 많은 한국분이 막연히 느끼는 것처럼 아주 먼 춥고 삭막한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 사실은 매우 가까이 있는 가장 긴밀한 이웃임을 새삼 느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 글에서도 세계지도를 바라보며 그 지도 안에 보이는 '길'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눈을 조금 더 크게 뜨고 상상력을 발휘하신다면 저와 같은 마음으로 오늘 말씀드리는 길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북극해 주요 항로 지도. 캐나다 북부를 지나는 북서항로와 러시아 북부 연안을 따라 이어지는 북극항로가 표시돼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북극항로 경쟁의 중심, 러시아 북동항로 
 
최근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유럽 강대국 등 소위 서방 세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북극항로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이재명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정책 중 하나도 북극항로 관련 사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위 지도를 기준으로 북극항로의 방향을 나누면 캐나다 북부 지역을 통과하는 북서 방향과 러시아 북부 지역을 통과하는 북동 방향,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그러나 인구 분포와 경제 규모를 중심으로 본다면 실제 북극항로의 개발 가치는 러시아를 통한 북동 항로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최근에 들어서야 자국의 조선 생산 능력 부활 정책을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캐나다·덴마크 등 전통적 우방국들과의 영토 분쟁까지 감수하면서 북극항로 개발을 자신들의 관할 아래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북극항로 개발 프로젝트를 이미 2010년, 즉 16여년 전부터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당연히 미국이 최근에 와서야 관심을 두기 시작한 북서항로 개발 진척도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또한 이 사업은 러시아만의 독자적 개발 사업이 아닙니다. 중국과 인도 등 친러시아 국가들의 대형 에너지 국영회사뿐만 아니라 프랑스 등 유럽의 다국적 에너지 기업, 일본의 대형 종합상사와 금융기관들도 여전히 각종 계약과 사업 지분 참여를 통해 러시아의 북극항로 개발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한국가스공사가 여전히 러시아 사할린 에너지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고 있고 일본의 종합상사들이 자국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사할린 에너지 지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이런 초대형 다국적 국책사업들은 쉽게 시작할 수도 없지만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사업입니다.
 
에너지 생산의 심장부인 야말반도와 기단반도, 설비 제조와 물류 선적의 배후 기지가 될 무르만스크, 에너지 저장과 환적의 중심지가 될 추코트카와 캄차카, 그리고 각종 쇄빙선 제조와 아시아 시장으로 나아갈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지는 연결선이 보입니다. 여러분께도 이렇게 거대하고 새로운 에너지와 물류의 벨트라인이 보이십니까?
 
그리고 제 눈에는 그 바로 아래쪽에 제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포항, 울산, 부산이 보입니다. 저는 매우 운이 좋아 이 세 항구 도시들을 자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누구라도 이 도시들을 방문한다면 한국의 지방 공업도시들이 갖춘 도로와 전기, 상하수도 등 각종 산업 인프라와 생산·물류·통관 시스템의 효율성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국책은행의 금융 지원, 일본 거대 종합상사의 자금력, 혹은 싱가포르와 같은 글로벌 금융기업들의 역할까지 더해진다면 한국은 단순히 세계 최고의 기술 생산 국가에 머무르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물류·금융 허브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극동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최우선적으로 협력해야 할 국가와 도시, 그리고 생산·물류·금융 등 여러 산업 분야가 결국 대한민국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시점에서 이 거대하고 새로운 에너지와 물류의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은 러시아로부터 잠시 멀어져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떠난 빈자리들은 빠르게 다른 국가와 기업들에 의해 대체되고 있습니다.
 
북극항로에서 운항 중인 LNG 운반선과 핵 추진 쇄빙선. (사진=바렌츠 옵저버)
 
저와 같은 '친한국' 러시아인들에게 한국으로 이어지는 길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로 다가옵니다. 이 글에서 굳이 정치나 외교에 관한 제 의견을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도 러시아 각지의 오일 필드에는 미국의 원유 채굴 기업인 슐럼베르거가 1만명 규모의 직원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의 종합상사들도 러시아 에너지 기업들의 지분을 계속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되새겨 보셨으면 합니다.
 
최근 이란 사태로 인해 미국 정부가 러시아산 오일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하는 정책을 발표할 정도로 국제 정세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달 초 러시아의 경제단체와 몇몇 기업들이 북극항로 사업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 포항시의 초청으로 민관 합동 포럼을 개최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나마 한국 정부의 작은 변화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 사이를 잇고 있던 오래된 이 '길'을 어떻게 하면 다시 선명하게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견을 정리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유리 시바첸코 루스퍼시픽그룹 컴퍼니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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