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새벽녘, 일본 홋카이도의 안개 자욱한 어느 바닷가에서 여우(Vulpes vulpes schrencki)를 만났습니다. 여리고 성긴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수풀 사이로, 새끼 여우들이 뒹굴며 놀고 있었습니다. 입 주둥이가 길고 뾰족했으며, 귀 뒷면과 네 발의 끄트머리 부분이 흑색으로, 주홍빛 털들이 영락없는 여우입니다. 이들은 인간이 가까이 다가가도 경계하기는커녕 무심하게 계속 각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바빴습니다. 한 녀석은 풀숲에서 개구리를 산 채로 잡아채 삼키는가 하면, 제법 덩치가 있는 녀석은 어디서 난 것인지 인간종의 장난감을 물어 던지며 놀고 있었고, 몸집이 가장 작은 녀석은 굴 속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와 아침 볕이 퍼지자 배를 깔고 늘어졌습니다. 오히려 이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다가, 문득 이런 질문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호기심 많은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새끼 여우
왜 한국에서는 여우를 만나지 못했지?
정작 여우를 만난 적 없는데도, 여우가 나오는 이야기라면 어릴 때부터 여럿 들어왔습니다.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 오누이 잡아먹는 여우누이, 여우 피하려다 범 만난다는 속담까지, 한국의 옛이야기와 속담에 여우만큼 자주 등장하는 야생동물 종이 또 있을까요. 그만큼 가까이 살던 이웃이었다는 뜻일 겁니다. 허나 정작 한 번도 한국에서 여우를 마주친 적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우에 대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에 따라가보니, 심지어 여우가 한국의 산과 들에 산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있나 싶었습니다. 여우는 툰드라에서 사막까지, 도시의 골목에서도 살아가는 적응력 높은 동물입니다. 야생 식육목 가운데 가장 널리 분포하는 종이기도 합니다. 한데, 한국의 여우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한반도 최북단과 비슷한 위도에 있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Primorsky)에서도 여우를 자주 만날 수 있다는데 말입니다.
실은 1940년대까지 여우(Vulpes vulpes peculiosa)는 한반도 전역 어디에서든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종이었습니다. 참고로 한국의 여우는 홋카이도에서 만난 여우의 친척뻘입니다. 그러던 것이 반세기 만에 자취를 감추고, 한반도에서 2020년대를 살아가는 인간종에게는 '호가호위'(狐假虎威)라든지 '여우비'와 같은 단어로만 만날 수 있게 된 데에는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추적하다 보니, 놀랍게도 원인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전국 쥐잡기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한반도 전역에 대대적으로 쥐약을 살포했습니다. 들쥐 등의 설치류는 여우의 주식인데, 쥐약을 먹고 죽은 쥐들을 먹은 여우들이 죽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모피를 노린 밀렵과 여우의 서식지였던 산을 뒤엎는 개발이 겹쳤습니다. 결국, 1978년 지리산에서 잡힌 한 마리와 1980년 강원도 양구에서 잡힌 한 마리를 마지막으로, 한국의 여우는 198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른 아침, 여우들이 굴에서 나와 쉬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여우라는 종이 인간의 인식에서 희미해질 무렵입니다. 2004년, 강원도 양구에서 여우 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한국에 아직 여우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실마리였고, 여우 복원 사업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에 의한 절멸이었으니, 사라진 여우를 되돌리는 것 또한 사람의 책임이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2012년,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여우 복원을 시작했습니다. 서울대공원에 있던 여우를 들여와 소백산 자락에서 인공 증식해 해마다 야생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40여 년간 끊겼던 여우의 소식이 산과 들에서 다시 들려오고 있습니다. 2025년에는 야생에 154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일부는 소백산을 벗어나 점차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바다를 헤엄쳐 섬까지 건너가기도 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우들로부터 한반도 여우의 자취를 추적하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직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소식만으로도 고무적일 만큼, 적은 수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훗날 그 새벽에 만났던 여우들처럼 한국에서도 자연스럽게 여우를 만날 수 있기를 상상해 봅니다. 힐끗 인간종을 마주치더라도.
글·사진=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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