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신다인·정주현 기자] 이재명정부 첫 대법관 임명을 둘러싸고 이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또다시 충돌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협의하는 관행을 건너뛰고 ‘서면 제청’이란 초강수를 두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여권에선 ‘대통령 패싱’이라며 조 대법원장 탄핵을 또다시 거론하고 있습니다. 법원 내부에서도 “막가자는 것”이라며 비판 목소리가 큽니다.
결국 조 대법원장이 대법관 인선을 통해 전원합의체 판결을 좌우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위해 대법원장 제청권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해 12월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5부 요인 초청 오찬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대법관 후보로 손봉기(사법연수원 22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24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 대통령에게 제청했습니다. 손 부장판사는 지난 3월 퇴임한 노태악 전 대법관, 김 부장판사는 다음달 7일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입니다.
헌법 104조2항에 따르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그동안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만나 협의한 뒤, 제청과 임명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조 대법원장은 이날 이 대통령을 만나지 않고, 서면으로 제청했습니다. 기존 관행을 깬 파격적 행보입니다. 대법관 후보에 대한 최종 합의가 불발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법조계 "조희대, 임명권자 대통령 허수아비 취급"
조 대법원장의 서면 제청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대법관 인선에 관여했던 변호사는 “민정수석과 법원행정처장이 실무 협상을 끝내면,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독대하면서 제청하는 모양새를 만드는 게 그동안 관례였다. 또 하나의 관례는 정부 첫 대법관은 대통령 뜻대로 하는 것”이라며 “조 대법원장은 제청권을 인사권으로 생각하고, 임명권자를 허수아비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장의 제청권 절차 규정이 없고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 헌법상 관행만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관행을 깨뜨린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현직 법관들도 서면 제청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서울고법 판사는 “제청권도 헌법상 권한이지만 임명권이 더 중요하다. 임명권자의 의사를 묻고 협의했어야 했다”며 “제청을 할 거면 빨리 했어야 했다. 뒤늦은 제청으로 공격 빌미만 제공하고 손 부장판사만 희생양이 될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청와대가 지목한 후보를 제청하는 게 왜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적격인 사람으로 대법관을 구성하는 게 목적이라면 자존심 싸움할 문제가 아니”라며 “설사 후보에 결격 사유가 있다면 대통령을 설득해야 하는데 대법원장이 입을 닫고 고집을 부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합 좌우하려고 하나…"대법원장 제청권 없애야"
조 대법원장은 지난 1월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가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4명을 추천한 지 6개월이 넘어서야 제청권을 행사했습니다. 추천위는 손 부장판사를 비롯해 김민기(26기) 수원고법 판사, 박순영(25기) 서울고법 판사, 윤성식(24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추천했는데, 이 대통령과 조 대법원장이 원하는 후보가 달랐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김 판사와 박 판사를 1·2순위로 제시했는데, 조 대법원장은 윤 부장판사를 1순위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표면적으로 갈등 원인이 대법관 인선으로 보이지만, 이면엔 지난해 5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혐의 파기환송 사건이 있다는 게 법조계 중론입니다. 대법원은 21대 대선을 한 달쯤 앞두고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혐의 사건을 기존 소부에서 전원합의체로 회부한 뒤 열흘도 안 돼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전직 법원장은 “조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현 대통령에 대해 사실상 자격 상실형을 선고했다”며 “문제 발단의 핵심은 이 판결이 아니겠나. 풀릴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조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법관 인선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은 “대법원장과 결이 다른 대법관이 들어오면 전원합의체나 대법원 운영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 변호사는 “최근 내란 사건과 김건희씨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끌고 가지 않았나. 조 대법원장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전원합의체 회부조차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다. 동료가 될 대법관을 대법원장 혼자 제청하게 해선 안 된다”며 “다른 선진국처럼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법조계 전체가 대법관 인선에 관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법관 2명 공석 장기화될까…"최종 책임은 대법원장"
조 대법원장의 초강수로 갈등은 장기화될 전망입니다. 조 대법원장의 일방적 행보가 공개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전 협의가 없는데 이 대통령이 조 대법원장 제청안을 국회로 넘기면,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일단 국회까지 간다’는 나쁜 선례가 생길 수 있다”며 “이 대통령의 가장 완화된 대응은 재고해 달라며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대법관 2명의 공백 기간도 길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최종적으로 조 대법원장에게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한 서울고법 판사는 “조 대법원장의 서면 제청이 법원과 정부, 국회 사이 갈등을 더욱 키웠다”며 “재판부 공석에 따른 재판 지연 부담은 최종적으로 대법원장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여권을 중심으로 조 대법원장의 탄핵설이 재점화되고 있습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19일 부산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원래대로라면 이미 (조 대법원장이) 탄핵됐어야 마땅한 사안”이라며 “해방 이후 최악의 대법원장 조희대씨는 물러나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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