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윤태곤의 분석과 전망)자유한국당, 뭉치면 죽고 잘라내면 산다
2017-11-27 06:00:00 2017-11-27 06:00:00
적폐청산의 초점이 박근혜 전 대통령 쪽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쪽으로 옮겨간 느낌이지만 특수활동비 문제는 예외다. ‘문고리 3인방’이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배달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만해도 국정농단의 ‘플러스 알파’ 정도로만 보였지만 이후 전개가 어지럽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어제의 실세’ 최경환 의원에 대한 1억원 전달 의혹은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가 있지만 난무하는 여러 ‘설’ 들에 대해선 정치권 전체가 숨을 죽이고 있다. 국정원이 쥐어주는 ‘떡값’ 수준까지 다 드러나면 상당수 여야 의원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전병헌 전 정무수석, 원유철 의원 등 중량감 있는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와 맞물려 그럴듯한 시나리오들이 흘러다니고 있다.
 
요컨대, 박근혜정부와 관련해선 빼도 박도 못하는 사안들이 있는 것이고 정치권 전반과 관련해서는 제도개선 대상과 불법의 경계에 있는 문제점이 있는 ‘투트랙’의 문제인 것.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먼저 검찰과 법무부 특활비에 맹공을 펼쳤다. 검찰 사무와 관련된 특활비 일부가 법무부로 거슬러 올라가는 건 지적할 만한 일이긴 하다. “전 정권만 공격할 게 아니라 앞장서서 이런 것부터 명확하고 투명하게 개선하라”고 정교하게 여권을 공격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국정조사, 특검을 실시하자고 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의 국정원, 청와대 특활비 그리고 현재 검찰의 특활비를 대상으로 한다”고 특검 추진의사를 밝혔다.
 
홍 대표는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인 국정원 특활비는 제외한다”고 덧붙였지만 국정원 특활비의 핵심인물 중 하나인 최경환 의원은 의원총회장에서 “특검법 발의 등 공정한 수사를 받을 제도적 장치를 당에서 마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검찰 출두 거부를 선언했다.
 
물타기, 물귀신 작전 등은 정치권에서 횡행하는 기본적 역공책이긴 하다. 하지만 한국당의 이번 공세는 자승자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먼저 법무부-검찰 특활비 건은 국정원 것과는 그 성격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한국당이 제일 잘 안다. 여당은 여유롭게 “황교안부터 조사하자”고 받아치고 있다.
 
둘째, 과거 정부 전반적 특활비? 딱 떨어지는 건이 하나도 없다. 셋째, 특검이건 뭐건 대중의 지지가 부족한 공세가 성공하려면 힘이라도 있어야 된다. 그런데 국민의당이 아무리 오락가락하고 있지만 김대중·노무현정부를 특검이 조사하게 하자는데 동의할 리가 없다. 한국당으로부터 수모와 멸시를 당한 바른정당이 힘을 보탤 리도 없다.
 
한국당 입장에선 ‘분리 대응’에 나설 사안이었다. 박근혜 정권과 직접 관련된 일에 대해선 명확히 선을 긋고 관행의 문제에 대해선 현 정권도 좀 몰아붙이면서 야당답게 제도 개선 논의에 앞장선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서청원, 최경환 두 사람을 쫓아내겠다는 지도부 입장에선 내심 손 안대고 코 푸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고.
 
그런데 왜 이렇게 가고 있을까? 박근혜 정권에 대한 의리? 그럴 리가 있나. 결국 두 가지 이유다. 첫째, 특활비라는 단어의 연관 검색어 중 하나가 홍준표라는 이름인 것.
 
둘째, 다수의 한국당 의원들이 현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이런 문제가 앞으로 저 혼자만의 문제겠냐. 우리 모두가 적어도 야당 파괴 공작, 정치탄압을 막아내야 하지 않겠냐”는 최경환의 호소가 이 약한 고리를 건드렸다.
 
2002년 검찰발 대선 자금 수사 당시, 한나라당은 그 위기를 인적 쇄신의 계기로 삼으면서 간판을 이회창에서 박근혜로 교체했다. 뭉치면 죽고 잘라내야 사는 길이라는 이치를 그 때는 알고 지금은 모르다니..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