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남북경협 새 지평이 열렸다…"기회의 땅, 뒤처지면 끝장"
통신·에너지·건설 등 관련산업 분주…경제단체도 일제히 환영 "한반도 신경제구상 실현에 최선"
2018-04-29 17:59:35 2018-04-29 17:59:35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11년 만에 남북 정상이 두 손을 맞잡으면서 한반도에 드리웠던 전쟁의 기운은 비에 씻긴 듯 해소됐다. 무엇보다 앞선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라는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재계의 주목도도 남달랐다. 한반도 신경제구상 등 남북 경제협력 확대에 대한 주요 경제단체들의 지원 의지도 강하다.
 
이번 정상회담을 지켜본 기업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표면적으로는 정상회담 직후 삼성, 현대차, SK, LG 등 주요 그룹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경감되고 한국 경제에도 훈풍이 불기를 바란다"며 "한반도 평화 정착이 기업들의 사업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에 그쳤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북한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기회 모색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 고위관계자는 29일 "이번 회담은 여러모로 지난번과 다르다. 북미 수교까지 이어질 경우 이는 되돌릴 수 없는 평화 체제를 의미한다"며 "새로운 기회의 땅이 열릴 수 있다"고 기대를 표했다.  
 
이미 재계는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앞서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남북 경제관계 전망 설문조사' 결과 응답기업의 82.5%가 향후 남북관계를 희망적으로 내다봤다. 또 응답기업의 절반(51.0%)가량이 '향후 장기적 관점에서 대북 투자 및 진출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도로, 철도 등 인프라 개발'(33.3%)과 '새로운 사업기회 모색'(33.3%), '저렴한 노동력 활용'(15.2%) 등이 주요 이유로 꼽혔다.
 
 
이전에도 생산기지로서의 북한의 매력에는이견이 없었다. 낮은 인건비에 비해 생산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언어, 문화적 배경이 비슷하고 손재주 등 노동자들의 기술력도 뛰어나다. 접근성이 좋아 물류비용도 적게 든다. 중국과 함께 우리 기업들의 해외 전진기지인 베트남에서 만난 현지 기업인과 재계 관계자들도 "포스트 베트남의 대안으로 꼽을 수 있는 곳은 북한 정도"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남북 경협의 발목을 잡은 것은 '정치'였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선언)' 이후 시작된 남북 경협은 정치·군사적 요인에 직접적 영향을 받으며 부침을 거듭했다. 특히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2010년 천안함 사건 등으로 대북 제재가 강화되며 경협의 물꼬를 돌려놨다. 2016년에는 개성공단 폐쇄라는 초강수 조치까지 등장하며 경협을 전면 차단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남북 경협이 오락가락한 끝에 기업들은 대북사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전경련의 설문조사에서도 투자·진출 의사가 없다고 답한 기업들 중 절반 이상(57.1%)이 '정치경제 불안정'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 이후 기류가 확연히 달라졌다. 앞선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평화체제 확립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었거나(6·15 선언), 남북관계 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뤘음에도 정권교체 후 동력을 상실했다는 점(10·4 선언) 등이 한계로 지적됐다. 반면 이번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두 정상이 공동선언을 통해 약속했다. 다음달 북미 정상회담까지 예정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에 관한 합의에 공감한다"며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북미 수교도 사실상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이에 기업들은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로 소비와 투자 심리가 개선되고 대외 신인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한 내 사회기반시설(SOC)과 각종 인프라 투자 유치, 개성공단 재가동, 관광사업 재개 등이 경기 개선과 경제성장률 제고로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대북사업을 주저할 경우 뒤처질 수 있다는 경계감도 팽배하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자칫 여기서 머뭇거리다가는 크게 후회할 수 있다"며 "기업에게는 큰 기회가 될 것이고, 이전의 모험적 성격과도 다르다"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남북 정상간 약속은 미국과 중국이 담보하게 된다. 기존 보수적 시각만으로는 변화의 본질을 읽어내기는커녕 뒤쫓기도 버겁다"며 "주도권 경쟁에 누가 나서는지를 보면 그 기업의 의사결정 깊이와 미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기업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언급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 연결 사업과 관련해 코레일은 해외남북철도사업단 등을 꾸려 북한과의 SOC 협력 준비에 착수했다. 국내 시장 포화에 직면한 SK텔레콤과 KT도 통신망 구축 등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접근을 모색 중이다. 이밖에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축과 신도시 구축 수혜가 기대되는 건설, 북한산 무연탄 도입 확대와 러시아산 가스관 배관 설치 등이 예상되는 전력·에너지, 북한 내부 인프라 투자 확대가 수요 증가 기폭제로 작용할 여지가 큰 철강 등 유망 산업의 기업들도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주요 경제단체들도 남북간 경제협력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표하고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반겼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7일 정상회담 직후 논평을 통해 "경협 여건이 성숙하게 되면 남북간 새로운 경제협력의 시대를 개척하는 일에 적극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재계 인사 중 유일하게 정상회담 환영만찬에 참석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앞으로 경협과 교류가 가능해지는 시기가 오면 정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함께 번영하는 길을 가도록 모두가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남겼다. 또 "그 때가 올 때까지 많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토론도 해서 제대로 경협을 전개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바쁘다"고도 덧붙였다.
 
전경련과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남북 경제협력 강화와 한반도 신경제구상 실현을 위한 국제 협력관계 구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무역협회 역시 무역계를 대표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남북 교역의 길이 열리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무협은 이어 북한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새로운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 세계 무역 대열에 합류, 한반도가 동북아 경제협력의 중심지로 변모하길 소망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