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만인보로 보는 일상사-14화)천태만상 다방별곡
“마담 나 모닝커피 줘”
입력 : 2018-10-22 08:00:00 수정 : 2018-10-22 08:00:00
TV드라마에서 극중 인물들이 만날 때 약속장소로 등장하는 곳을 보면 드라마가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혹은 극의 배경이 된 시기에 따라, 대중이 애용하던 공간의 변천사를 보게 된다. 80년대 후반의 사북탄광촌을 한 배경으로 삼았던 TV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사북의 <양지다방> 마담이다(종로에는 진짜 ‘양지’다방이 있었다). 달걀노른자를 동동 띄운 ‘모닝커피’와 쌍화차를 팔던 다방, ‘마담’과 ‘레지’가 있던 다방은 세월이 흘러 커피전문점으로, 케이크카페, 디저트카페, 천장 높은 북카페로 변모해가고 우리의 일상공간도 바뀌어간다. 
 
살아남은 학림과 명보, 사라진 은하수다방
 
TV프로그램에서 몇 차례 소개되고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종종 배경으로 등장했던 오래된 다방이 있다. 학림다방, 1956년 이래 대학로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드라마와 영화 때문인지, 다방의 역사와 이 장소에 얽힌 유명인들의 일화가 인구에 회자된 때문인지, 20~30대 젊은이들이 호기심으로 찾는 시간여행 명소가 된 다방이기도 하다. 이들은 30년 된 방명록을 보면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다방의 일화들을 신기해하고 부모세대의 청춘시절 문화를 상상하고 체험한다. 그것은 역사박물관을 찾는 심정과 흡사할 수도 있고, 다채로운 교복세대인 그들이 부모가 입던 획일적인 검은 교복―일제 강점기의 잔재인―을 입고 사진을 찍거나 계란프라이가 들어있는 양은도시락을 흔들어 먹어보는 일종의 복고문화의 유행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1975년 관악캠퍼스로 옮겨가기 전 동숭동 서울대 문리대의 청춘들은 1956년 학림다방이 생긴 이래 50~70년대를 거쳐 가며 문단과 예술계의 이런저런 인물들, 이를테면 천상병·전혜린·최인훈·이청준·김승옥·박태순·김광규·황지우·김정환·김지하·김민기 같은 인물들을 배출했다. 다방의 이름이 ‘학들의 숲’ 학림(鶴林)에서 ‘배움의 숲’ 학림(學林)으로 바뀐 것은 1962년 시작된 서울문리대의 축제 ‘학림제’(學林祭) 때문이라지만, 학생들은 이 다방 처음 이름 학림(鶴林)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축제 이름을 만들었으니 돌고 돈 셈이다. 학림다방이 서울대생들의 아지트였던 만큼 그 역사상 대학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 혹은 그 시절 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소수가 누린 일종의 특혜와 같은 문화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학림다방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81년 전두환 신군부정권이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을 반국가단체로 몰아 처벌할 때 붙인 이름 ‘학림(學林)사건’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학림다방은 전민학련의 모임 장소였다. 1983년 원래의 건물이 헐리고 신축 건물로 바뀌었지만, 학림은 여전히, 80년대의 열혈 청춘들이 머리를 맞대고 민주주의를 논하던 곳이었다. 엘리트 지식인들의 문화공간에서 사회변혁을 논하는 학생운동세력의 소통공간으로, 대학로 연극·예술계 종사자들의 대중문화 확산공간으로, 학림다방이 기여해 온 역할은 괄목할 만하다. 한편, 이제는 누구나 찾는 대중적인 휴식공간이 되었지만, 학림다방의 초창기 역사상 ‘선택된’ 엘리트들의 문화공간이었던 정체성을 떠올려 보면 그 소수에 속하지 못했던 다수에게는 거리감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학림다방이 민주화를 논하기 위해 모인 전민학련의 첫 회합장소였다면, 청계천피복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의논하기 위해 전태일 열사가 동료들과 첫 회합을 가졌던 장소는 은하수다방이었다. 평화시장 일대에서 ‘시다’로 일하는 어린 ‘여공’들의 살인적인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그가 ‘바보회’를 조직하고 노동자들과 토론을 하던 곳도 은하수다방, 명보다방이었다. 전태일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명보다방은 ‘명보커피숍’으로 이름이 바뀌어 아직 평화시장을 지키고 있지만 은하수다방은 사라졌다. 
 
당시 커피 값이 50원이었고 그것은 평화시장 시다가 하루 14시간 노동으로 벌 수 있는 액수였다고 하니, 전태일이 모임 때 종종 모두의 커피 값을 지불하느라 재단사 월급을 다 썼다는 것도 이해될 만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방 외에 함께 모여 토론할 다른 공간이 없었다. 학림다방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대신 낡은 소파와 옛날 다방의 정경을 갖춘 명보다방에는, 주 고객인 상인과 노동자들 사이, 간간이 전태일 열사의 발자취를 찾아 들르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로에 있는 '학림다방'. 사진/학림다방 공식 웹사이트 캡처
 
해방 전후의 다방 풍경
 
일제강점기 하의 1930년대는 다방과 ‘카페’가 번성했던 시기였다. 다방은 커피와 차를 팔지만, 이 시절 카페는 이른바 ‘카페 걸’과 술이 있어서, 서구의 근대적 삶을 동경하던 지식인 룸펜들과 모던보이들이 향락을 누리던 공간이었다. 일본을 통해 조선반도에 들어온 이 카페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어 식민지 경성 거리를 배회하던 지식인들의 교류 장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33년 시인 이상이 24세 때 아내와 함께 열었던 종로의 다방 <제비>는 종로, 본정(충무로), 명치정(명동) 일대에 예술인들의 다방이 줄줄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경성 지식인들의 퇴폐·향락의 다방·카페와 클럽의 분위기는 해방 후 어딘가에서, 남한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이승만의 정치공작과 이에 동원된(사실 지원한) 이른바 ‘잘 나가는’ 인텔리 여성들의 한심한 행보로 이어졌다.
 
복고 문화가 확산되면서 옛 다방의 이름을 쓰는 카페들도 최근에는 많이 생겨나고 있다. 상수동의 '제비다방'에는 젊은 뮤지션들과 작가들이 많이 찾고 있다. 사진/뉴시스
 
1946년 명동 마돈나다방에 
숙녀들 미녀들이 모였다
그 궁핍의 식민지 시절
이런 미녀들이
어디 숨어 있다가
성큼성큼 모여들었다
눈부셨다
밤마다 댄스파티
분홍저고리
노랑저고리
미 군정청 중령 소위 대위 들이 와
그녀들 하나하나 끼고 돌았다

< … >

모윤숙의 뜻
그뒤
이승만의 뜻으로
이 미군 장교들에게
유엔 명사에게
삼팔선 이남의 시대가 맡겨졌다

낙랑클럽 밤마다
서투른 영어
몸으로 익어가며
춤과 칵테일 그리고 한쌍 한쌍의 육체
그렇게 이승만의 단독정부 밤 지새워 만들어갔다

모윤숙은 메논을 맡았다
낙랑클럽 마치면 
한강의 달밤에 나갔다 인도의 달밤이었다

장차 
그녀들
세상 주름잡아
무슨 부인회 간부
무슨 교수
< … >
 
바야흐로 낙랑클럽으로 시대열리더라 이렇게 저렇게 열리더라
(‘낙랑클럽’*, 29권) 
[*시의 원제목과 원문에는 모두 “낭랑”으로 되어 있으나 오기임으로 정정해 인용함] 
   
모윤숙과 가까웠던 메논은 대한민국 건국을 돕는다는 이유로 1948년 1월에 파견된 유엔 한국위원단의 단장이었고 이 위원단은 해외국가의 대표 6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김활란 총재와 모윤숙 회장을 중심으로 이화여전 출신 100~150명이 모인 사교클럽 낙랑은 이승만과 한민당의 로비활동을 위해 미군정청 간부들과 외국의 외교관, 유엔한국위원단에게 몸 바쳐 헌신한 것으로 평가된다.
 
1960년대 추억의 다방을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한 청계천 체험관. 사진/뉴시스
 
어떤 ‘평범한’ 다방들 
1950년대 문화의 중심지 명동에는 문학, 음악, 미술, 연극, 영화 예술인마다 애용하는 다방이 따로 있었는데, 예를 들어 음악감상실 ‘돌체’, ‘르네상스’는 후세대들에게도 귀에 익은 이름으로 남았다. 1960년대에 확산되기 시작한 음악다방은 7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통기타 세대들이 모인 명동의 심지다방(오비스케빈)도 있고 70년대를 풍미한 음악다방 쉘부르도 있다. 음악다방 디제이(DJ)에게 신청곡을 적은 쪽지를 건네는 것은 80년대에도 볼 수 있었던 문화였다.
 
그러나 한 시대의 문화아이콘으로 특징적이었던 다방들 외에도, 그저 평범히,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허름하게 있던 다방들이 있었다. TV드라마 속 사북탄광촌 시골의 ‘양지다방’ 같은 곳도 있고, 서울역이든 부산역이든, 어느 역에 가도 하나쯤 보이는 역전다방이 있었다. 
 
논산역전 다방 가고파
아침부터
<신라의 달밤> 틀어대고 있다
마담과 
레지 둘
번진 하품 메아리 졌다 뽕짝이 제일이었다

파나마모자
하얀 양복
칠피구두 신은 사나이 들어왔다
오충남

마담 나 모닝커피 줘
마담도 무엇 하나 주문하드라고잉

< … >
(‘오충남’, 19권)
 
작은 도시나 시골에서 더 자주 보이는 옛 다방의 한 풍경은 사실 식민지 경성의 카페 ‘여급’을 대하는 태도와 흡사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성희롱과 ‘수작’이 이뤄져 그 시절의 인식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도 이른바 ‘티켓다방’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가 이와 연관되어 있음직하다. 
 
군산 신흥동 호남주조장 주인 김재선 영감은
언제나 대머리에 남은 흰머리
정성들여 염색하여
한결 젊어 보인다
뱀대가리 지팡이 짚고
시청 앞 개복동 앞 여기저기 다니며
밴밴한 다방 레지하고 노닥거리며
계란 뜬 모닝커피 시켜 먹으라 하고
선심 쓰며 사귄 뒤
그 막내딸보다 아래인 처녀하고
강 건너 장항으로 가
내친김에
멀리 온양온천까지 가 재미 보고 온다 
< … >

누가 김재선 영감한테 감투 하나 더 씌워 주기를
다방레지연구회 회장이라 하며 비아냥대도
통 화내지 않고
연구보다 친목으로 고치는 게 좋겠어
내가 어디 학자인가
그저 애들 귀여워해주며
친목을 돈독히 할 뿐일세 한다

< … >
(‘김재선 영감’, 6권)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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