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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내가 '홍남기'다
2020-10-22 06:00:00 2020-10-22 06:00:00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가을은 이사철이다. 날씨가 좋기도 하고 자녀들의 학교 진학 등을 고려해 시기를 결정한다. 그런데 마음먹은 대로 이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전세 대란 때문이다.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다. 그렇지만 인구 천만에 육박하는 서울에서 그리고 서울보다 인구가 많은 경기도와 인천에서도 있는 일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부동산 임대차 보호법을 입안한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세 난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는 세입자가 전세를 연장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 팔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해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알려진다. 부동산 임대차 보호법을 통과시키기면서 수도권에서 발생할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는데 홍 부총리가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집은 물론 구하면 된다. 그런데 전세 대란은 현실이 되고 있다. 전세를 구하기 위해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원하는 지역에 물량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많은 전세 예비 임차인이 한꺼번에 등장해 추첨을 통해 계약자가 결정되는 해프닝까지 있을 정도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집을 보러온 사람들에게 방역비까지 요구하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이른바 '전세 난민' 사태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 안정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필요하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여러 주택을 가지고 있는 자산가는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 의식주에서 가장 첫 번째인 거주지 확보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공간에서 다수의 국민이 살고 있는데 한 사람이 여러 채의 집을 고수익의 목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다. 그래서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고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하는 법안을 초고속으로 통과시켰다. 부동산 투기 열기를 꺾기 위한 정부와 여당의 목적은 고소득 다주택자를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마다 사정이 다른 부동산 시장에 대한 법 적용은 정교해야 하고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목적만을 생각해 과정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다면 공감하기 보다는 반발로 귀결된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지난 16일 실시한 조사(전국500명 유무선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4.4%P 응답률5.3%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세입자 권리를 강화한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전세 구하기와 주택 매매가 모두 어려워졌다고 하는 반면 기존 임차인의 주거 안정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부동산 임대차 보호법을 재개정해야 할지 현행대로 유지할지' 물어보았다. '재개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48.1%,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38.3%로 재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높게 나타났다. 전세 난민이 속출하는 지역으로 지목된 서울은 재개정 의견이 훨씬 더 높다. 재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54.6%였다.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8.1%에 그쳤다. 지역마다 여론이 다르지만 인구 천만 명이 살고 있는 서울 지역은 심각해 보인다.
 
전세와 월세 파장을 법안 통과시에 예상하지 못했을까.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5분 발언을 얻어 '임대차 보호법'과 관련된 발언을 했다. 미리 구성이 있었던 연설이 아니었지만 여야를 뛰어 넘어 연설을 접한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받았다고 평가를 받는다. 부동산 투기 세력을 비호하는 발언이 아니라 현실 감안을 강조한 설명이었다. 부동산 임대차 보호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소위를 열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선제적으로 논의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전세 대란 지적에 정부의 대답은 통과 과정이고 오히려 지금 후퇴하면 임대차 보호의 진정한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고 답변한다. 국토교통부는 9월의 전월세 거래량이 전년도 대비 17.8% 늘었고 올해 8월과 비교해도 0.2% 늘었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 부동산 정보 광장의 집계는 다르다. 8월에 비해 30% 가까이 급감했다는 정보다. 왜 다를까. 두 가지 착시가 작용한다. 국토부 통계는 '신고일' 기준이고 서울시는 '계약일'이다. 부동산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데이터를 적용한다면 '계약일' 기준 자료가 더 적합하다. 또 하나의 착시는 9월말과 10월초에 추석 연휴가 있었다. 보통은 명절 연휴 이후에 이사하는 경향이 있다. 추석 연휴 이후 지금까지의 통계 동향을 바라보아야 전세 대란의 파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래저래 여론몰이식 법안 통과에다 탁상행정 비판을 받게 됐다.
 
부동산 문제를 단순히 부동산 투기 세력 근절과 가진 자들에 대한 통렬한 심판으로만 접근한다면 해법은 없다. 임대차 보호법 때문에 한 나라의 경제 수장이 전셋집조차 구하지 못한다면 일반 세입자들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여기저기 아우성이 들린다. 내가 홍남기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insightk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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