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마Ⅱ(은퇴한 사람들의 해외 마을 만들기)는 단순한 은퇴자 주거 모델이 아닌, 초고령 사회와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와 개인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새로운 국가 전략입니다. 해외 거점에 형성될 은퇴자 커뮤니티는 항공·관광·헬스케어·부동산 산업에 걸쳐 신수요를 만들고, 동시에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의 교두보가 됩니다. 거점도시는 결국 한국형 개발협력(ODA), 글로벌 공급망 전략, 문화 교류의 실제 인프라가 됩니다. 은사마Ⅱ의 1차 거점은 라오스 비엔티안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두 도시 거주자들의 기고를 통해 이 전략의 향후 전개 방향을 조망합니다. 본 기획은 한국 ODA 자금이 라오스 경제발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 흐름이 한국의 새로운 국가 전략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인프라로 '육상 연결국' 꿈꾸는 라오스
라오스는 더 이상 스스로를 '내륙 봉쇄국'으로 부르지 않는다. 대신 중국·태국·베트남을 잇는 '육상 연결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핵심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인프라의 재원은 대부분 외부 차관과 ODA다. 성장과 부채가 뒤엉킨 라오스 개발 모델은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구조다.
라오스의 개발 방식은 분명하다. 기반시설을 외부 자금으로 먼저 세우고 그 성과로 상환하는 '투자–성장–상환' 구조다.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금융, 일본·아시아개발은행(ADB)·세계은행의 개발 자금은 철도·도로·뱅크·상수도·도시 인프라에 활용됐다. 라오스–중국 철도는 물류비 절감과 관광객 유입을 견인하고 있고, 비엔티안 메콩강변 관리 사업은 홍수 방지와 도시재생을 동시에 목표로 한다. 참파삭 주의 상수도 사업은 농촌 음용수 접근성을 개선하고 있으며, 국립의대병원·공안부 병원 프로젝트는 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라오스는 이 사업들을 국가 도약의 출발점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부채 부담도 커지고 있다. 라오스의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후반 수준으로 추정되며, 상당 부분이 인프라 차관이다. 코로나 이후 환율 충격은 이 부담을 더욱 키웠다. 라오스 통화인 낍(LAK)은 2022~2024년 사이 달러 대비 절반 이상 가치가 떨어졌다. 세수는 낍으로 걷지만 부채는 달러로 갚아야 하기에 성장 모델의 재무적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일부 연구는 라오스 정부가 부채 경감을 위해 국영기업 민영화나 자산 매각 가능성을 검토했다고 언급한다. 현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직 운영권이나 자산이 공식적으로 양도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가능성이 언급된다는 사실 자체가 라오스의 채무 압박을 보여준다.
즉, 라오스의 인프라 기반 개발은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환율·재정·채무 리스크가 누적되면 국가 자산 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 남서부 윈난성 모한과 라오스 북부 보텐을 잇는 중국–라오스 철도. (사진=중국인터넷정보센터)
인프라, 기능과 운영 사이 간극
이 모순은 현장에서 더 뚜렷해진다. 라오스의 개발 문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수요·산업이 따라오지 못하는 데 있다. 철도는 개통됐지만 역세권 개발과 물류 체계가 더디고 여객 운행 편수도 제한적이다. 병원은 세워졌지만 의료·행정 역량 부족으로 시설이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다. 필자가 라오스 병원에서 맹장수술을 받을 때 경험했던 간호·서비스 체계의 부족은, 시설만큼 운영과 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인프라의 실체는 이동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비엔티안–방비엥 간 고속도로는 라오스 발전의 상징이지만 통행료는 현금만 받는다. 필자는 현금이 부족해 뒤차에 QR코드로 송금을 하고 현금을 받아 통행료를 낸 경험이 있다. 라오스에서 QR 결제가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정작 고속도로에서는 전자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완공된 지 오래인데도 이용량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받는 고가의 통행료와 물류 차량의 현실적 사용 불편도 지적된다. 존재하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인프라의 단면이다.
타켁–사반나켓–팍세 구간은 라오스 경제의 동맥인 13번 국도다. 구간마다 노후도가 다르고 일부는 포장 상태가 열악하지만, 끊임없이 오가는 물류 트럭 행렬은 라오스가 '육상 연결국' 전략을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반나켓과 팍세의 경제특구(SEZ)는 또 다른 현실을 드러낸다. 부지와 도로는 조성됐지만 기업 유치·허가·산업 지원 체계가 부족해 투자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지속된다. 인프라만으로 산업이 자라지 않는다는 현장의 경고다.
비엔티안과 방비엥 간 고속도로 톨게이트. (사진=이주명)
ODA, '짓는 것'에서 '작동시키는 것'으로
라오스의 지역개발 ODA는 하나의 사실을 확인시킨다. 인프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운영·수요·사람·제도가 채워져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발 협력에는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운영 역량과 제도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 철도에는 물류·통관·역세권 개발이 필요하고, 병원에는 의료 행정과 인력 교육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개발 ODA는 기업 생태계와 결합해야 한다. 산업단지는 부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노동시장과 기업 지원 서비스가 갖춰져야 한다. 셋째, 차관 기반 인프라는 재정 부담과 성장 효과의 균형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상환 속도가 성장 속도를 앞지르면 개발은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현장에서 직접 느낀 것은 라오스가 확실한 성장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빚으로 만든 인프라가 진정한 자산이 되려면 라오스와 공여국 모두 운영·제도·인력이라는 후속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한국 ODA는 이제 단순한 건설 파트너가 아니라 '인프라를 작동시키는 운영 모델을 만드는 파트너'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라오스는 빚으로 짓는 미래가 아니라 운영을 통해 갚아가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라오스 ODA 협력의 다음 단계이며, 진정한 지속 가능한 발전 구조다.
이주명 IBK기업은행 과장·라오스 지역전문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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