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SPC그룹 계열사 샌드팜에서 3년차 사원이 10년차 상급자를 괴롭혔다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돼 감봉 처분을 받은 걸로 확인됐습니다. 직급·연차가 낮은 하급자가 상급자를 괴롭혔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는 건 매우 드물지만, 샌드팜에선 이런 이례적인 판단이 내려진 겁니다. 그런데 가해자로 지목된 3년 차 사원이 샌드팜 노동조합 소속이었고, 노조 결성 직후 괴롭힘 신고가 접수된 걸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노동계에선 SPC그룹이 괴롭힘 신고를 악용해 노조를 탄압하는 신종 수법을 쓰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6월17일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SPC삼립 사옥과 공장에 대해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SPC삼립 본사 모습. (사진=뉴시스)
3년차 사원에 '직장 내 괴롭힘 인정'…'3개월 감봉' 징계
18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문제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지난 5월 접수됐습니다. 회사는 즉시 외부 노무법인에 조사를 의뢰했고, 해당 노무법인은 조사를 통해 피신고인 A씨가 신고인 B씨·C씨 등에게 한 일부 행위가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이를 근거로 샌드팜은 지난 7월 A씨에게 '3개월간 감봉 10%' 징계를 통보했습니다. A씨는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피신고인인 A씨는 샌드팜의 3년차, 신고인 B씨와 C씨는 모두 10년차 직원입니다. B씨는 A씨를 상대로 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서에서 "(A씨가) 일도 못한다는 말은 수도 없이 했다. '청소나 잘하지'라고 혼자 중얼거렸다"라고 밝힌 걸로 알려졌습니다. C씨 역시 "(A씨가) '일 못하면 월급 적게 받아야지'라는 말을 했고, '당신은 나보다 일 못하잖아'라고도 했다"면서 신고한 걸로 전해집니다. 반면 A씨 측은 "업무에 대해서 이야기한 건 있지만 그런(비방) 말을 한 적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회사는 A씨가 지난해 8월 B씨를 비방하는 호소문을 작성, 동료 11명에게 유포한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인정했습니다. 해당 호소문엔 "B씨가 소스 업무 외 다른 포지션을 8년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라인 전체에 부담을 주고 있으며, 협조적이지 않고 신입 직원에게 불친절·폭언을 일삼는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샌드팜 측은 "호소문 내용의 진위를 떠나 그런 호소문을 집단적으로 만들어 돌린 행위 자체가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걸로 판단했다"고 했습니다.
샌드팜 사건, '직장에서의 지위·관계 우위' 역전된 판정
이번 일이 노동계에서 관심을 끄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10년차 상급자가 3년차 사원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고, 이것이 실제로 인정된 사례가 매우 드물다는 점입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에선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A씨는 B씨보다 직급과 근속연수에서 현저히 밀리는 하급자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A씨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은 성립하기 힘듭니다. 실제로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하급자가 상급자를 상대로 괴롭힘을 신고하는 건 따로 통계가 없는 걸로 안다. 설사 있다 해도 유의미한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했습니다.
2020년 7월16일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1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노조 결성 직후의 이례적 신고와 인정…'노조 타깃' 논란
나머지 주목할 부분은 샌드팜에서 노조가 결성된 직후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됐다는 점입니다.
A씨가 B씨를 비방하는 호소문을 작성해 동료들에게 유포했다는 시점은 지난해 8월입니다. A씨가 B씨와 C씨 등을 상대로 '일을 못한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시점은 따로 지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A씨에 대한 괴롭힘 신고가 접수된 건 올해 5월20일로, 화섬식품노조 샌드팜지회가 설립(4월16일)된 지 불과 한 달여 만입니다.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A씨는 지회에서 사무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샌드팜 노조가 결성된 직후 A씨를 겨냥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된 셈입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샌드팜 노조가 설립된 직후, 10개월 가까이 아무 일이 없던 사건(호소문 작성)을 계기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고 징계로 이어진 건 신종 노조 탄압 수법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영섭 로앤 노무법인 노무사는 "샌드팜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 구성 요건이 충족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며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는 하급자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괴롭힘이 신고됐고, 실제로 인정됐다면 부당노동행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성희 소장도 "직급과 근속연수 차이가 이렇게 큰 상황에서 어떻게 괴롭힘이 가능한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사실"이라며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례적인 사안인 만큼 지방노동위원회 등 공식 기구를 통해 객관적인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SPC "객관성·공정성 확보해 조사…노조 소속 고려 안해"
한편 <뉴스토마토>는 SPC그룹 샌드팜에서 벌어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관해 입장과 반론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SPC그룹 측은 "사건의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외부 노무법인을 통해 조사를 진행했으며, 진행 과정에서 노동조합 소속 등은 전혀 고려된 바 없다"고 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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