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노력해서, 바늘구멍이라도 뚫어야죠. 자꾸 피하면 쫓아다니면서 얘기도 하고 말도 붙이고. 안 됐겠지만 군사분계선 불명확하니까 이거 사고 나겠다, 진짜 총격전이 벌어질 수가 있겠다. 서로 자기 땅이라고 우기다가. 이런 건 대화해서 선을 긋자. 이런 거라도 해야죠."
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튀르키예로 가는 대통령 전용기 기자간담회에서 "'흡수통일', '통일 대박'처럼 책임도 못 질 이야기를 정치인들이 하니까 갈등만 격화됐다. 그 업보를 줄이기 위해 그 업보 이상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북 간 소통이 완전히 끊긴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그는 이어 지난 3일 외신 기자회견에서도 다시 '바늘구멍'을 꺼냈다. "지금 대한민국과 북한의 상태는 바늘구멍조차도 없는 상태"라며 "남북 간에 대화가 완전히 단절됐고, 하다못해 비상연락망까지 끊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북한은 우리 남측의 접촉 노력에 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9일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피스 메이커'(평화 중재자) 역할을 요청한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북한은 한국의 대화 노력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있지만, (한국에 비해) 미국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북한이 중시하는 '체제 보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것도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게 북한 판단"이라며 "지금은 북·미 대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측의 입장 때문에 북미 소통이 제약을 받아선 안 된다"며 "북·미 대화 여건 조성에 필요하다면 '한·미 연합훈련도 충분히 (조정을) 고민할 수 있다'는 입장도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 말대로 남북 간 소통 채널은 단절된 지 오래다. 북한은 2023년 4월 군 통신선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연결 채널을 모두 끊었다. 심지어 서해에서 발견된 북한 주민 시신을 반환하겠고 통지해도 묵묵부답이다. 남북 간 우발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판은 정전협정 하나 남았고, 한반도 내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이 통화화는 핑크폰만 살아 있을 뿐이다. 우리 땅에서 정작 남북 간 소통은 모두 사라지고, 사실상 미군인 유엔군과 북한군 연결선만 달랑 남은 현실이, 한반도 위기 상황을 웅변한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일각에서는 이런 라인 연결이 가능하다, 이런 국제 행사로 북과 만날 수 있다는 제안을 들고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남북 간은 물리적인 연결선이 끊긴 게 아니라, 북한이 정부 차원 대화는 물론이고 민간의 사회·문화 분야 교류나 경제협력 제안 등에 일체 대꾸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남북 연락 채널 2000년 이후 최장기간 단절…특사 파견·친서 교환 분위기도 미성숙"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지난 3일 낸 '이재명정부 대북정책 주요 쟁점과 정책적 고려 사항' 보고서(성기영 수석연구위원)는 이와 관련해 "2023년 4월부터 32개월간 지속돼온 남북 연락 채널 단절 상태는 2000년 이후 최장기간을 기록하고 있으며 대북특사 파견이나 친서 교환 등을 위한 분위기도 미성숙하다"고 진단했다. 한반도 정세 관리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대통령의 해외 순방 구상 발표나 파격적 대북 제안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대북 전단 살포 중단,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9·19 합의 복원 의지 표명 등 선제적 긴장 완화 조치에 대해서도 북한은 소극적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러·우전쟁의 장기화와 북한의 대러 파병 등 군사협력 강화, 북·중·러 연대의 가시화 등 지정학적 요인과,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주장, 대북정책 방향을 둘러싼 남한 내 논란 등은 대북정책 추진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선포 이후 외교 영역을 확대하며 대남 전략을 대외 전략 이행의 전술적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조한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7~8월 김여정 담화와 ('비핵화를 빼면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9·21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연설은 북미 대화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기면서도 남북 관계 단절의 장기화를 예고한다"고 전망했다.
이어 "냉전 종식 이후 남북 관계의 진전과 후퇴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었으나 2025~2026년을 계기로 △관계 단절의 고착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주장 제도화 △'평화적 두 국가론' 제기 등으로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계속해서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대외 전략 추진 과정에서 남북 관계의 지위와 영향력을 격하하고자 시도해온 북한이 단기간 내에 남북 대화 재개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예측하면서 "남북 양자 관계의 차원을 벗어나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 정상화를 지원함으로써 남북 관계 복원의 모멘텀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북미→남북→남북미→남북미중으로 협상의 플랫폼을 넓히는 방식의 평화 체제 구상을 가동함으로써 북핵 문제 해결의 동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자는 것인데 "궁극적으로 남북미중 4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 체제 협상의 기본틀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의제 설정·협상 플랫폼 못 만들면, 내년 4월 북·미 정상회담 해도 '1회성 이벤트'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등 평화 체제를 포함하는 의제 설정과 북·미 협상 플랫폼을 만들지 못하면, 내년 4월 트럼프의 중국 방문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해도 '1회성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2019년 6월30일 판문점 회동처럼 말이다.
이런 제안의 밑바탕에는 "비핵화를 대북 협상의 입구에 놓는 방식의 정책적 현실성은 소멸됐다"는 정세 판단이 깔려 있다. 김정은은 "단언하건대 우리에게서 '비핵화'라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9월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고 했다. 트럼프는 "북한은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인정했다(물론 핵보유국 '인정'과는 다른 것이다). '선(先)비핵화'론은 물 건너갔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론도 '피스메이커 트럼프'를 자극해 북·미 정상회담을 추동하겠다는 의도인데, 북·미가 정상 수준에서 의미 있는 회담이 가능하려면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북한이 파병하고 있는 한 미국 정부 그리고 의회의 지지를 끌어내기 어렵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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